어인준 (진주 당당한의원 대표원장)
6월 1일 지방선거를 5주 앞둔 이제서야 광역·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이 결정되는 모양이다. 예비후보자 등록은 2월부터 시작됐는데 두 달이 넘도록 선거구도 모르고 선거운동을 해야 했을 후보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공직선거법 제24조에서는 국회의원 선거일 13개월 전까지, 지방선거 선거일 6개월 전까지 선거구 획정 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2016년과 2020년 총선 모두 불과 선거를 한 달 반을 남기고 획정 안이 제출되었다. 2014년과 2018년 지방선거 선거구 역시 2~3개월 전에 결정되었다.
국회의원들에게 지방선거의 주권이 침탈당했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한 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바보이고, 세 번 속으면 공범이라고 하는데, 최소 다섯 번 연속으로 법규가 위반됐으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방법도 모르겠다. 선거구 획정이 불공정하다고, 우리 당에 불리하다는 계산과 비판은 열심히 하지만 정작 국민주권을 침탈한 위법,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무엇이 두려워서인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해보는 후보자들도 보이지 않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정당도 국회의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죽이 잘 맞다. 정치 신인들을 포함해 모든 후보자들을 위해 보장되어야 할 기회를 제한하는 행위가 선거 조작이 아니면 무엇인가?
법원 판결을 기대했다가 실망한 시민단체들은 급기야 지난 3월 9일 대선 당일과 사전선거일에 직접 투표소 감시에 나섰다. 전국의 모든 투표소에 출입한 사람의 숫자를 일일이 직접 센 다음에 각 투표소의 개표결과와 비교 분석하는 블록버스터급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생업을 포기하고, 자원한 민주투사들은 법적으로 채택될 수 있는 증거자료까지 확보하기 위해 첩보전을 방불할 정도로 동분서주해야 했다. 정해진 법률대로 모든 절차가 진행됐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소중한 선거기간 동안에 공익적인 선거 감시활동을 위해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후보는 과연 누구인지 찾아보고 응원하는 것이 어떨까?
국회의원이 국회의원 선거구와 지방선거구 획정을 제때 못하고, 판사가 판사들로 이루어진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판결을 못 내린다. 마치 중이 제 머리 못 깎고,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는 속담이 들어맞는 상황이다. 사실 스님들은 스스로 머리를 잘 깎는다고 하고, 내가 아는 한의사들은 자기 병 스스로 잘도 고친다. 진실로 못한 것인가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안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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