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실천선비 남명과 진주정신
[경일춘추]실천선비 남명과 진주정신
  • 경남일보
  • 승인 2022.04.2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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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강신웅


우리 역사는 일제 강점기 때 문화 말살정책으로 겨레의 전통이 뿌리째 흔들렸고, 식민지에서 해방됐어도 주체정신은 간곳없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모든 면에서 자주성을 상실했다.

더구나 지방자치제도는 약 30여년 정도 경과했지만, 아직도 지방정부의 활성화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없는 관련조직 부서만 확대돼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보다 확실한 지방자치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간 각각의 지역에서 오랜 시간 보존해온 그들만의 정신과 역사의식을 재확립하고, 아울러 그 정신과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해야 한다.

진주에는 다행히 오랜 기간 주체정신의 역사가 있었다. 1592년 김시민 진주목사가 군사 3800여명으로 왜군 2만여명을 물리친 진주성 대첩, 의암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절한 의기(義妓)논개, 의병정신 등은 진주의 주체정신과 분명히 일치하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남명 조식(曺植)선생은 우리 민족 정신사의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의(義)를 보고 행하지 않는 위선을 꾸짖고 진정한 선비 상(像)을 지행일치와 행동유학을 실천함으로써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나라의 혼란을 보고 죽음에 맞서 탄핵한 ‘단성소(丹城疏)’는 남명의 이러한 신념을 행동으로 표현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남명은 ‘경의정신과 지행일치’라는 실천적 학문을 강조했다.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의병을 일으켜 분연히 일어선 것은 남명의 실천적 학문이 토대가 됐다. 이런 정신이 임술 농민항쟁과 형평운동 같은 민권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조선조 후기 진주에서 민권운동이 제일 먼저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된 것은 불의를 보고 좌시 하지 않는 진주 사람들의 호의(好義)정신의 발로(發露)였다.

고려 민권항쟁 및 임술 농민항쟁과 일제 강점기 형평운동은 한결같이 인간의 사회평등을 추구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기본조건을 추구 한다.

진주정신 즉 주체 호의 평등을 바탕으로 형성된 고귀한 그 정신은 그 원천이 남명의 유학실천 사상으로부터 발현되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이뤄온 진주정신은 사실상 영남유맥의 정수인 실천선비 남명의 경의(敬義)사상이 그 뿌리 인 바, 앞으로도 긴 시간 쉽게 소멸되지도 않을 것이며, 결코 소멸돼서도 안 된다. 아직도 고귀한 진주정신의 불씨가 온 누리에 남아 있을 것이니, 이 불씨들을 온전히 되살리고 계승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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