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밀양 '수산제 역사공원' 홍보관 문 열어
[시민기자]밀양 '수산제 역사공원' 홍보관 문 열어
  • 경남일보
  • 승인 2022.04.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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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3대 저수지 중 하나
삼한시대 벼농사 위해 축조
 
 


아름다운 봄꽃들이 지천에 피어나면서 어느새 들판에도 돋아난 파란 풀잎의 이슬이 영롱한 봄날 우리들의 몸과 마음도 봄바람을 타고 산뜻해진다.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 있는 ‘수산제’ 역사 공원이 조성된 후 수년이 지나 최근 홍보관이 문을 열었다. 아련한 기억 속 초·중·고교 교과서 앞부분에 나오는 삼국시대의 산업 편 농업에 대한 역사에서 우리나라 3대 저수지는 밀양의 수산제와 제천의 의림지, 김제의 벽골제 라고 배웠다. 밀양 수산제의 역할은 그만큼 대단했다.

당시 농업은 고대국가의 기반 산업으로, 논농사의 성패 여부는 물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있었을 것이다. 삼한시대 벼농사를 위해 축조된 관개용 저수지였던 수산제는 황토 흙으로 된 제방이 일제 강점기 전까지 밀양 수산리에서 양동리에 걸쳐 약 1㎞ 정도가 남아 있었으며 그 후로는 논으로 편입되었고, 저수지의 규모는 4.5㎢ 였다고 한다.

1990년 12월 20일 경상남도 기념물 102호로 지정된 수산제 수문은 배수를 위하여 만들어 놓았으며 강바닥의 암반을 뚫어 만든 것으로 일부가 남아 있고, 발굴된 수문은 폭 1.5m, 높이 1.8m 정도로 나무로 만든 수문의 갑문은 소멸되어 구조와 형상을 알 수 없다.

낙동강 제방이 없을 당시 강물은 수산제 수문이 있는 이 일대가 모두 낙동강물이 남해 바닷물에 밀려 들어왔던 곳이었고, 항상 물이 항상 고여 있었던 곳이었으며, 초동면 곡강 마을 앞 논까지 연결되어 옛날 왕이 이 일대에 배를 타고 다녔다는 기록도 있다.

3∼4년 전 수산제 앞 도로(수산에서 창녕군 부곡 간) 건너편 양동리 하남산업단지 조성 당시 수산제와 연결된 도서 마을 뒷산에 문화재 발굴 조사가 있었는데 이 일대에 옛날 사람들이 주거했던 곳으로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되기도 했다. 수산제는 강물이 고여 있었고, 이 주변의 산 중턱에 옛날 사람들의 주거지가 확인된 셈이었다.

낙동강 둑이 축조된 뒤에도, 아니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수산제가 있는 이 일대와 양동리, 초동면 곡강 마을 앞 논까지 여름철 비가 많이 올 때 낙동강물이 밀려 들어와 벼가 침수되는 피해 입기도 했으나, 근년에 배수장 시설을 보강해 이런 피해가 없어졌다. 현재의 수산제 수문이 있는 이 일대에도 배수장 시설 없이 그냥 뒀다면 창녕군 우포늪처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시골에 있는 한 공원으로 여길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수산제 역사 공원을 최근에 개장한 홍보관과 함께 둘러보고 낙동강 역사, 농사일의 중요성까지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해록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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