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마늘 한 꾸러미
[경일춘추]마늘 한 꾸러미
  • 경남일보
  • 승인 2022.05.0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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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이덕대 수필가


언제부턴가 주고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도시생활에서 받는 경우는 있지만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변명 같지만 도시생활이란 것이 소용에 맞추어 사고 만들기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가 아닐까. 모든 것을 금전으로 거래해야하는 도시에서 나눔의 온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시골마을의 투박한 집 벽에 매달려 있는 시래기나 마른 묵나물 꾸러미, 계절에 관계없이 붙박이로 추녀아래 매달려 있는 마늘묶음 등은 언제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목가적인 풍경이다. 시간과 손길이 만들어낸 시골생활의 소품들은 바쁜 일상에서도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나눔의 준비 같아 보인다. 당장의 필요에 의해 살 수 밖에 없는 도시 삶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찾아간다. 텅 빈 마을을 돌아보니 쓸쓸하고 허전하다. 늦은 봄 햇살은 사람 없는 빈집에서 짙푸른 나뭇잎과 막 자란 잡초와 어우러지고 망초 하얀 꽃에는 나비들만 무심하다. 버려진 폐가 헛간에는 여러 마리 새끼 고양이가 눈망울을 굴리며 쳐다본다. 눈치를 살피던 어미 고양이가 허겁지겁 달아나자 새끼들도 엉거주춤 눈을 맞추다가 놀란 듯 삽시간에 돌담을 넘는다. 어디선가 한가하게 뻐꾸기 운다. 개 짖는 소리도 닭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마을은 한적함을 넘어 침묵의 심연이다. 고향에 오기 전까지는 보고 싶은 것도 가볼 곳도 많았었는데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멍해진다. 앞산을 타고 내려온 언덕 빼기에는 밤나무 꽃이 한창이다. 밤꽃 향기는 아릿하고 몽롱하다. 하늘을 찌를 듯 자란 죽순은 연초록 가지들로 푸른빛을 만든다. 사람흔적 드문 마을에는 나무들만 신났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농촌 생활은 여전히 바쁜 모양이다. 몇 번의 전화에도 응답이 없던 친구와 겨우 연락이 닿아 부탁한 물건을 받고 돌아서려는데 느닷없이 외양간 벽에 걸려있던 마늘 한 꾸러미를 건넨다. 올해는 마늘 작황이 좋지 않아 많이 못준다는 말을 보태면서. 극구 사양하는데 있으니 준다면서 억지로 떠맡기듯 한다. 멈칫멈칫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 받아 들고 말았다. 일 년 동안의 먹거리이고 없으면 사다 먹지는 않을 텐데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한편으론 도시 삶의 각박함과 시골 살이 나눔의 여유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마음에 울컥해진다. 고향걸음 했다가 친구가 준 마늘 한 꾸러미 덕분으로 텅 빈 마을에서 느낀 쓸쓸함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흐뭇하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남에게도 필요하다는 평범한 진리와 함께 나눔에는 물건의 귀함과 관계없이 가치의 향기가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하는 고향 벗의 마늘 한 꾸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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