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장지연의 진양삼절에 등장하는 진주정신의 뿌리는
[경일춘추]장지연의 진양삼절에 등장하는 진주정신의 뿌리는
  • 경남일보
  • 승인 2022.05.0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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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강신웅


1910년 1월 7일자 경남일보에 위암 장지연(張志淵) 당시 주필이 진주의 정경과 문화를 노래한 ‘진양삼절(晉陽三節)’은 진주를 상징하는 역사와 문화가 됐다. 진양삼절은 풍부한 물산, 즉 풍산과 아름답고 재능이 넘치는 여인, 즉 연기(姸妓), 또한 대의와 충절의 상징인 죽승(竹蠅)을 진주의 뿌리이자 자랑꺼리임을 강조한 것이다.

장지연 선생의 진양삼절의 세 가지 요소가 오늘날 진주인의 충절심 절의(節義)와 상징물인 대나무 즉 죽승에 직결된다. 진주는 고려 시대부터 하공진, 현종 때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은열공 강민첨장군과 이빈 목사에 이어, 단종 때 충절신 충장공 정분 그리고 사육신의 한 분인 충렬공 하위지 등 많은 충절신을 배출했다. 진주대첩과 계사순의 때의 진주목사 김시민과 논개가 충무공과 의기로써 명성을 떨쳤다. 1896년에 명성왕후 시해와 단발령에 단호하게 항거했던 의병장 노응규에 이어, 3·1운동 때 진주에서의 9회 대한독립만세 사건은 타 지역과는 남다른 애국투쟁도 그 근원은 진양삼절 중의 하나인 죽승과 연기가 기원이다.

다음 교육, 문화예술의 고장인 진주는 신라 소성왕(799년) 때 ‘노거현’이라는 전국 최초의 초등학교가 설립됐고 고려조 때에는 강민첨 장군이 수학했다는 진주향교 설립, 조선조, 사림파들의 권학을 위한 최초의 모임인 ‘금란계’라는 일종의 연구집단이 조직됐다. 이 역시 진양삼절 중의 하나인 ‘풍산 과 연기’가 근원이다.

다음으로 ‘진주인의 타고난 문화예술의 재능’의 결과물인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인 ‘진주검무’,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인 ‘한량무’, 제12호인 ‘진주포구락무’, 제21호인 ‘진주교방굿거리춤’. 제27호인 ‘진주오광대’ 등 수많은 무형문화재가 전승되고 있다. 대한민국 축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와 진주유등축제, 이도 장지연선생의 역사의식의 진양삼절 중 하나인 ‘풍산과 연기’가 근원이다. 끝으로 옛날 사림의 본거지였던 진주지역 선비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산청 남명 조식, 함양 일두 정여창과 같은 대선비들의 출현이다.

하여 오늘날 우리 진주인과 영남인들 모두에게 지역의 진정한 역사적 전통과 교훈을 일깨워준 진주 선대의 명현(名賢)인 장지연 선생의 선구자적 지혜를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아울러 진양삼절의 정신을 계승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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