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연 시민기자의 책 읽는 하루]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유수연 시민기자의 책 읽는 하루]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5.09 14: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치매환자에게 꼭 필요한 건 ‘가족의 사랑’
 
 

한국의 65세 이상의 사람 중 10%가 치매로 고통 받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치매와 정상의 중간단계인 경도인지장애는 65세 이상 노인 5명 중 1명꼴이라고 하니, 주변에도 참 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치매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와 함께 산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수시로 제가 누구인지 물어보셨고, 어느 날은 벽을 보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다가 갑자기 가봐야 한다며 짐을 싸서 집 밖으로 나가려고도 하셨습니다. 음식을 드실 때면 독이 있는지 킁킁 냄새를 맡으시며 늘 의심을 하셨고 그러다 어떤 날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인자하신 모습을 하고 계실 때도 있었지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같이 산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어렸던 저에게도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많이 있습니다.

 

노부토모 나오코 作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부모님, 우리 모두의 고민…가정의 달에 추천


제가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바로 노부토모 나오코가 지은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라는 책입니다.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의 이야기이지만 대한민국의 고령화도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어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줍니다. 이 책에는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밝았던 엄마가 하루가 다르게 치매가 더 심해져 가는 과정이 잘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치매에 걸렸지만 여전히 자식만을 생각하는 엄마,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불평 없이 집안 일을 도맡아 하며 엄마를 돌보는 90대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한 가족의 눈물 나는 사랑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책은 오랜 시간 영상 디렉터로 살아온 작가인 딸이 새로 장만한 개인 카메라로 집에 올 때마다 부모님의 일상을 촬영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작가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영상을 보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부모님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5년간 계속된 촬영은 우연한 기회에 특집 방송으로 나오게 되었고, 뜨거운 반응에 시리즈화되다가 그 후 영화로도,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도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작가는 엄마와의 전화 통화 중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딸은 매일 같이 엄마와 전화로 수다를 떨곤 했는데요.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조금 이상해짐을 느낍니다. 예전에 한 이야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이미 했던 이야기를 다음 통화에서 처음 이야기하듯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 몇 번인가 생기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병원에 검사를 받았지만, 엄마의 철저한 준비로 30점 만점에 29점이라는 고득점을 받게 됩니다. 아직은 의지로 검사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치매 초기 단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1년 반 만에 오늘 날짜도 기억하지 못하고, 채소 이름을 세 가지 밖에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저는 치매가 이렇게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 치매라는 병이 단순히 기억만 잃어가는 병이라 생각했었는데, 진행과정에서 인지 기능 저하뿐만 아니라 성격변화, 우울증, 망상, 공격성 증가 등의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는 등 가벼운 증상으로 시작하다 나중에는 갑자기 화를 내고 공격적으로 구는 등 성격까지 변화게 됩니다. 보수적인 패션을 좋아하는 엄마는 치매 후 줄무늬에 줄무늬 옷을 매치하는 등 절대로 하지 않을 조합의 옷을 입고 등장하기도 하고, “내가 노망이 났다! 짐만 되고 죽어야지”를 반복하며 한바탕 울부짖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자다 일어나서는 자신이 난리를 쳤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울고 있는 작가에게 “너, 무슨 일이니? 왜 울고 있어?”라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으며 열심히 달래주기도 합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예전의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절망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수많은 치매 환자 가족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 안타깝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비록 치매에 걸렸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였습니다. 엄마는 치매로 요리를 할 수 없게 되었어도 작가가 본가에 올 때마다 “잘 왔다. 저녁은 뭘로 할까? 뭐 먹고 싶니?”라고 물으며 식사를 챙겼다고 합니다. 딸이 오는 날 음식을 준비 못 한 엄마는 “대체 왜, 이렇게 중요한 날에. 모처럼 네가 왔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지”라며 자신을 탓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영상을 편집하면서 부모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감사함에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많았으며, 어쩌면 작가의 가족에게 ‘엄마의 치매는 신이 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라고 하는 말에 가족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사랑도 책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엄마가 할 수 없게 된 집안일을 자연스레 이어받아 직접 빨래도 하고 요리도 하며, 마침내는 바느질까지, 그것도 콧노래를 불러가며 하는 작가의 아버지는 “이것도 운명인 게지, 숙명이야. 네 엄마가 지금껏 집안일을 해왔으니, 네 엄마가 아프면 이번에는 내가 해야지, 별수 있나”라며 묵묵히 엄마의 간호를 하십니다. 성격까지 변해버린 엄마의 온갖 투정을 다 받아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존경심마저 듭니다.

그리고 작가는 치매환자에게 가족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으로 대하는 것 하나뿐이라 합니다. 작가는 굳이 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집안일, 간병일은 훨씬 잘하는 간병 전문가에게 맡기고 가족은 오직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 당사자에게 애정을 가득 쏟는 것을 자신을 본분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간병은 부모가 목숨 걸고 해주는 마지막 육아다. 엄마는 지금, 자신의 전부를 걸고서 자식인 내가 인간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마지막 육아를 해주고 있구나. 엄마와 아버지는 지금 몸소 내게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리라”라는 책 속의 글이 저의 가슴에 깊이 남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보살핌으로 자라고, 아이를 키우며 더 성장하며 마지막으로 부모를 간병하며 더 큰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에게 이 책은 우리 부모님, 우리 미래를 겹쳐볼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책이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님의 감사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유수연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