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당신 자식의 미래만 생각하지 맙시다
[경일시론]당신 자식의 미래만 생각하지 맙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5.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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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 연계전공 교수)
서유석 교수


엊그제 어버이날, 어머니만 모시고 조촐히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30여 년 전 일화를 들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수능 1세대로, 1994학년도 대학입시는 혼란 그 자체였다. 일선 학교에서는 수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2차 수능까지 두 번 치러졌고 대학별 고사, 즉 본고사도 실시된 시절이다. 대학별 고사에는 논술까지 추가되었다. 수능 문제 풀이와 대학별고사의 문제 풀이 방식 또한 서로 달라, 몇몇 입시생들은 두 가지 버전 모두 준비해야 했다. 더구나 1994학년도 대입부터 중복 지원이 가능해졌다. 입시가 혼란 그 자체였다. 이름 있는 대학들의 경쟁률 미달 사태가 벌어지는 한편, 대학별 고사로 입시생들의 희비가 교차하기도 했다. 역대 최고 불수능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2차 수능에서 성적이 1차보다 오른 입시생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아, 두 번에 걸친 수능 실시는 시행 첫해 이후 없어졌다.

어머니가 근 30년 만에 자식에게 털어놓은 비밀. 내 어머니는 닭장차를 타신 일이 있었다. 그것도 아들 대입 때문에. 복잡하고 수많은 시험이 계속되는 94학년도 대입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건 문·이과 교차지원 허용이었다. 교차지원이 허용되면, 아무래도 수학 성적이 월등한 이과생들이 유리하다. 문과생 고득점자들이 불리해질 수도 있는 구조다. 당시 어머니는 학교 학부모회 같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셨는데도 동네 어머님들과 함께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 함께하셨다. 문민정부 첫 해라고는 하지만 경찰의 강경 시위 진압이 남아있던 그 시절, 경찰은 그렇게 시위에 나온 어머니들을 닭장차에 태워 서울 외곽에 모두 내려드렸단다. 그러나 어머니들이 여기서 어떻게 집에 가라는 거라며 항의해서, 다시 닭장차를 타고 전철역 있는 곳까지 그 수많은 닭장차들을 몰아가셨다는 것이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겠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당시 시위에 나선 어머니들은 언뜻 생각하면 소위 문과생 자식을 둔 부모들만 참여했을 듯싶지만, 그렇지 않았단다. 잘못된 정부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건 우리 모두의 자식이니 고3 엄마들이면 다 같이 가자는 게 당시 분위기였고, 오히려 당시 이과생 어머니들이 더 많이 참석했다는 말씀도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어른들은 내 자식 남의 자식 가리는 게 덜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힘을 써야 한다는 격언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직 ‘우리 모두의 합리’에 대한 기대와 행동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지난 정권의 모 법무부 장관 일가의 잘못된 자식 사랑에 대해서는 이제 법원의 판단이 거의 끝났다. 사람들이 분노했던 건, 그들 일가의 위조와 사기 등 불법 행위보다는, 모두에게 최대한 공평하게 놓여야 할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자기 자식들 앞에만 가져다 놨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의 법부무 장관 후보자 역시 파렴치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소위 약탈적 학술지라 불리는 외국 저널에 후보자 자식이 직접 쓰지도 않은 아티클을 올리거나 남의 책을 그대로 베껴서 전자책을 내질 않나, 이 모든 게 입시 컨설팅이었을 뿐, 불법이 아니니 문제없다는뻔뻔함.

한동훈 후보자의 자식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불법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소위 이 땅의 상층 엘리트라는 자들이, 자기 자식의 미래만 챙기는 그 태도를 보라. 자신들이 봉사해야 할 국민 앞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30여 년 전 필자 또래의 부모들은 내 자식, 남의 자식 모두의 미래를 위해 힘썼는데, 왜 지금의 오륙십 대 부모들은 자기 자식 앞길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그것도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 말이다.

법은 사회를 지키는 최저선이다. 불법적인 행동이 아니었다고 모든 게 용인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말 이 땅의 상층 엘리트의 하나로 국민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면, 한동훈 후보자는 부끄러움을 깨닫고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하길 바란다. 불법이 아니란 이유로 자기 자식의 앞길만 생각하는 그 태도부터 장관 후보자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 오욕으로 점철된 모 법무부 장관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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