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8)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8)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5.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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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꽃을 피우고 문화는 꽃에 동화되고 인류는 새로워지면서 살아갑니다. 신문학 초창기 지식인 중에는 예던길 그대로 풍류를 사랑한 탓에, 신문학 물을 먹었노라 멋은 부리면서도, 심혈을 기울여야 피는 말꽃(문학)이 무엇인지, 더러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말에 꽃을 피우는 행위가 언어예술 활동이라는, 그러니까 말에 꽃을 피우는 게 예술이라는 걸 알지 못한, 군자연(君子然)의 마당에 들어온 에세이·수필은 신문학이라는 놀이의 도구로 흘렀다는 거지요. 예술이 되기는 어렵고 힘들지만, 문화가 되는 것은 누워 떡 먹기보다 쉽고 수월하니까, 신문화라는 너울을 쓰고. 저널리즘으로 이지-고잉 했으리라 여깁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은 건 아닙니다. ‘에세이·수필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본질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진행되면서 정의를 내려보려고 많은 분들이 고심했었습니다. 그래도 큰 물줄기는 바꾸지 못했습니다. 몽테뉴의 ‘독자들에게’나 홍매의 ‘수즉기록(隨卽記錄)’을 뛰어넘지 못했지요. 그것이 저널리즘의 등에 올라탄 만필을 에세이·수필로 인식하게 한 바탕이 됐습니다. 자기 한탄과 설움을 퍼내느라 말꽃을 보지 못했거니 합니다.

말도 시대 따라 유행을 타고 흘러갑니다. 같은 뜻을 가진 건데도 음표가 다른 낱말이 생기지요. 요즘 사람들이 마냥 주장하는 것에 서사(敍事)란 게 있습니다. 만화를 그리든,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서사 없이는 작품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이야기(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세상에 이야기 아닌 게 있습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니.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이야기이거늘. 있었거나 겪었거나 한 일을 그대로 옮겨놓는 ‘그런 일이 있었다’ 하면 다 이야기지요. 앞에서 봤던 이광수 선생의 ‘인생의 향기’도 이야깁니다. 세상살이라는, 자기의 삶에 자기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지요.

지금 쓰이고 있는 ‘서사’란 말은 의미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있는 걸 적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말이 되는, 말을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란 거지요. 하지만 영판 새로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발명(發明)한다는 거 어렵잖아요. 해서, 앞 사람들이 쓸만한 건 다 써버려서 나는 쓸 게 없다고 한탄한 사람도 있다잖아요. 그래서 이미 지난 일을, 누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를, 뜯고 부수고 조각내고, 잇고 붙이고, 닮은 듯 다른 걸 만들어내는 노고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걸 요즘 사람들이 창의 정신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하더군요. 사실 창의력이란 파괴력을 동반합니다. 망가뜨려 보는 재미, 그것이 새로운 걸 만드는 동력이 됩니다.

‘에세’를 ‘에세이’로 에세이를 ‘隨筆’로 말 만든 저들은 창의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隨筆을 수필로 그냥 가져다 쓰는 이들은 순응력이 뛰어난 분들이지요. 창의보다 순응은 편합니다. 교육의 문제라 할까요, 문화의 차이라 할까요? ‘인생의 향기’를 흉내 내면서 우리의 에세이·수필은 그냥 부지런히 계몽을 답습해 왔습니다. ‘수필은 말꽃이 아니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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