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정치인의 ‘고매한’ 거짓말, 예리하게 파악해야
[경일시론]정치인의 ‘고매한’ 거짓말, 예리하게 파악해야
  • 경남일보
  • 승인 2022.05.1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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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당분간 일면식도 없는 분들의 무차별적인 문자공격을 좀 더 버텨내야 할 판이다. 일면식 있는 분들의 그것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시민으로 살아가려면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6월 1일까지는 이 정도 인내심은 감수해야 할 듯하다. 대선을 앞둔 지난 연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정치인들의 문자메시지는 공해수준이다. ‘음소거’ 기능이 없었다면 못 견디겠지만, 윈스턴 처칠의 쓸데없는 경고 때문에 인내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를 경멸하는 국민은 경멸받을 수준의 정치밖에 소유하지 못한다’ 해서 말이다. 솔직히 정치인 처칠의 말은 거북하다.

더한 분도 있다. 플라톤, 도스토옙스키 같은 이는 ‘거짓말은 정치인이라는 위정자의 문제가 아니라, 피치자의 문제’라고 했다. 우매한 백성들에게 진리를 그대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받을 충격과 부작용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고매한 거짓말’이 필수적이란다. 마키아벨리, 홉스 같은 이들도 거들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도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심지어 도덕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정치인은 거짓말 할 자격과 자유가 있다고 보았다. 라스웰은 ‘보통 사람’이 ‘정치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거짓말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베버 같은 이도 생계형과 권력 향유형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구조적으로 처한다고 했다. 심지어 대의를 추구하는 진정성을 가진 정치인도 거짓말을 피해가기는 쉽지 않다고 보았다.

그래선지 한국의 생계형·권력향유형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잘도 한다. 보통 사람은 상상 할 수 없는 일을 벌여놓고도 당당한 모습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지겹도록 보았고, 새 정부 인사청문회에서도 확인했다. 풀뿌리민주정치의 꽃이라는 지방선거전에서도 거짓과 술수, 음모가 난무하고 있다. 정치인의 거짓말과 부도덕함은 너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해 나열조차 어렵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거짓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치에 대해 비교적 이해의 폭을 넓게 가지고 있는 연구자들은 대부분 정치인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서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현실주의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거룩한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성직자도 아니고 오히려 일반인 보다 더 많은 욕망을 가진 존재인데다 갖은 유혹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풀이하자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실망해서 정치를 외면하거나 경멸하지 말고 원래 그런 부류의 집단이거니 하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민주시민의 자세를 주문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거짓말 할 개연성이 많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참여하는 민주시민이 되라는 말이다. 정치인을 순수한 이상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다가 시민들이 체념하고 외면하면, 정치인의 거짓말을 더욱 부채질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을 무조건 믿고 권력을 맡길 것이 아니라 항상 권력이 남용되거나 악용될 수 있는 점을 염두에 두고 권력을 균형 있게 나누어 견제하도록 늘 감시하고 판단하라는 의미다. 공자 같은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경멸하지 못한다면, 너무 비루해질 것 같다. 해서 더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인의 인성적 문제점을 예리하게 직시하고 파헤치는, 그리고 퇴출시키는 자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두 눈 부릅뜨고 예리하게 살펴야 한다. 오늘날 정치인의 이 같은 인성 부재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참되지(眞) 않고 착하지(善) 않아도, 아름다우면(美) 최고’라는 가치영역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6.1지방선거에서는 진·선·미의 가치영역을 제대로 갖춘 건강한 인성의 정치인을 찾아내는 혜안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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