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을 설명해 맞히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 웬수’
어머니의 눈망울 속
가랑잎이 떨어져 내린다
충돌과 충돌의 포연 속에서
본능과 본능의 골짜구니 사이에서
힘겹게 꾸려온 나날의 시간들이
36.5 말의 체온 속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평생의 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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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기리어야 할 날이 많다, 그중에서도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대충 둘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거나 둘을 나누어 놓아도 하나고, 하나에서 하나를 보태도 하나라는(不二) 의미로서 지정한 것 같고 서로를 인정하고 이날만큼은 상대의 어려움을 특별히 살펴보라는 취지 같기도 하다,
성장 과정과 직업환경이 다르고 또 영역의 범위가 같지 않은 상태에서 온전하게 상대를 이해하고 모든 것을 수용한다는 게 불가하지만, 가정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어느 정도 맞추어 살아가는 지혜를 갖추라는 것이 지정의 깊은 뜻 같기도 하다.
TV 예능 프로에 편집 없이 방영된 장면에서 한바탕 웃음 속에도 거둘 수 없는 속내가 표출되었다, 평생을 나누던 절절한 감정이 윤기 있는 표현으로 가슴에서 불시에 튀쳐 나왔다. 그리고 시청자의 보통적인 감성의 공감대를 건들어서 숙연했다. 익숙한 타인, 은혜하는 왠수, 필요충분조건의 계약관계. 영혼마저 담보해야 하는 저 거룩한 신앙. 그리고 예속과 종속 속에서.
저 어려운 삶의 방정식을 같이 푸는 동지. 그 부부의 한 모서리는 늘 무덤까지 가서도 티격태격 돼야하는 시 한 편이다.
주강홍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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