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9)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19)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5.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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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의미로서의 수필은 에세이의 역어(譯語)다.(김동욱. 국문학개론.민중서관.1963)’에 빗대면, 일본에서 온 ‘隨筆’은 <에세이>라는 아메리카나 말을 일본말로 대체한 거라니까 이 나라에 있었다는 隨筆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할까요. 류병석 선생이 ‘우리의 <隨筆>과 저쪽의 <에세이>는 같은 개념을 갖는 용어가 아니다.’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듕귁에서 온 漢字(한자)말 隨筆=붓가는 대로가 전에 있었던 것이고, 그럼 에세이에서 온 현대 수필(隨筆)은?

“그들은 당시 고전적인 에세이, 현대 서구적인 문장, 재래의 동양적인 문장, 저널리스트의 행문(行文), 기타 잡저를 개괄해서 수필이라 했다. 그것은 수필이 아직 독특한 문학의 한 장르를 정립하지 못한 까닭이다.”

윤오영 선생의 말대로라면 에세이는 여러 영역에 걸쳐져 있으며, ‘아직 문학의 한 장르로 정립되지 못한’ 거라니까, 익지도 않은 풋것을 들여와서는 우리가 배앓이를 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한데, 백 년을 주무르고도 마냥 그 꼴이라니? 이 흐름을 새로운 개념의 형성과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소모되고 있다 싶은 것이, ‘답답한 감 장수야 외지 말고 감 팔아라’ 이런 심정과 이슷도 하요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멋쟁이 진리 앞에 우리는 언제나 서 있습니다. 그러나 늘 꾀를 부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힘 안 들이고, 쉽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애씀 없이 얻어지는 거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의 본능은 노동을 좋아하지 않지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기를 바라면서. 오죽하면 ‘보리밥 좋아하고 일 좋아하는 놈은 쇠아들놈’이란 말이 있겠어요.

1939년 2월부터 1941년 4월 종간호까지 26호를 발행한 <문장>지에서, 소설 65명, 시 46명, 시조 10명, 희곡·시나리오 8명, 평론 59명인데, 수필은 무려 183명이라니(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 매 호당 평균 7명을 배출한 셈이 됩니다. 수필가가 양산되었다는 거지요. 순수문학을 추구했다는 잡지에서도 수필작품은 꽃이 아니었기에 그럴 수 있었으리라 여깁니다.

교양 있다는 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술술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말을 글로 옮기는 과정이 수월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글쟁이들은 그 장르에 맞는 어떤 표현법이 있어야 한다고 해요. 예를 들면 시에는 시어(시적 언어)가 따로 있다고 하잖아요. 당연히 에세이·수필에도 있는데, 너무 널널해서 그런 개념을 못 느끼는 거 같아요. 말꽃이게 하는 언어가 따로 있다는 개념이 흐리다 보니 그냥 저널리즘 문장 쓰듯 수필 문장을 쓰는 거지요. 그래서 수필은 쓰기가 쉽습니다. 쓰기가 쉬우니까 아무나 쓰게 되는 거구요. 그래서 말꽃의 영역에서 수필의 장르 개념이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요.

암튼, 우리는 수필隨筆을 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수필>이건 <隨筆>이건 글자나 부르기나 쓰기나는 똑같은데 속은 그 수필이 그 수필이 아니라는 거지요. 우리가 쓰면서도 언어는 생물이라는 말이 낯없게, ‘수필’이 우리 말꽃으로 동화되지 않고 있음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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