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 강씨 가문에서 유래된 진주 육회비빔밥
[경일춘추]진주 강씨 가문에서 유래된 진주 육회비빔밥
  • 경남일보
  • 승인 2022.05.1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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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진주교방음식의 진수는 단연 꽃밥이다. 진주성 전투 때 군관민들이 울면서 먹었다는 진주의 역사가 담긴음식이다. 그간 진주의 육회비빔밥은 진주성 전투를 주제로 구전(口傳)되어 왔다. 설화이긴 하나, 진주의 혼이 어리기 때문이다.

진주의 육회비빔밥은 거란을 물리친 귀주대첩의 숨은 공신 은열공 강민첨 장군의 제사에서 유래되었다.

조정은 장군의 공로를 인정하여 식읍(食邑) 300호를 제수하였다. 진주 서쪽 하동군의 악양 화개 지역이었다. 진주 백성들의 조세부담이 과중해졌다. 은열공은 제수 받은 식읍 300호를 모두 진주목에 기증했다. 진주 백성들은 1021년 은열공이 세상을 떠나자 은열공의 탄생지에 은열사를 세워 추모했다.

불천위(不遷位·도덕적 학문적으로 기상이 높아 나라에서 만년에 이르기까지 제사를 지내게 한 성현) 제사나 향교, 서원의 성현을 받드는 제사에는 날 것 그대로를 쓴다. 생고기의 향을 흠향(歆饗)한다는 의미다. 날 것을 차려 받드는 위인을 혈식군자(血食君子)라고 한다. 희생 제물을 흠향하는 현인을 칭송하는 표현이다.

“우리 문중에 혈식군자가 몇 분이다”라는 말은 곧 ‘명망 있는 가문’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혈식군자가 없으면 양반이라 해도 종가라고 부르지 않을 정도로 혈식군자는 대단한 위치에 있었다.

진주성 내 은열사에서 올리는 강민첨 장군의 제향에는 지금도 소고기를 네모지게 토막 내 날 것으로 진설(陳設)한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朔望)이면 20여명의 후손들이 모여 천년이 넘도록 제례를 이어오고 있다. 제례를 마치고 나면 소고기를 나누었고 이것이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진주 육회비빔밤이 되었다.

반드시 들어가는 산 도라지, 고사리, 질금(숙주나물)에도 진주정신이 담겼다. 땅속 깊이 곧은 뿌리를 내리는 도라지, 척박한 땅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잃지 않는 고사리 그리고 숙주나물은 청렴의 상징이다. 이 어찌 진주비빔밥을 허투루 볼수 있을 것인가.

최근 들어 진주비빔밥을 모방한 육회비빔밥이 타 지역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단지 육회를 비빔밥에 얹는다고 해서 진주비빔밥이 될 수 없다. 흉내를 낸다고 진주비빔밥이 될수 없다는 얘기다. 진주비빔밥에는 나라를 사랑하고자 하는 충정과 얼이 담겨져 있다. 바로 진주정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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