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을 가다[4]임진성길(12코스)
남해 바래길을 가다[4]임진성길(12코스)
  • 김윤관
  • 승인 2022.05.1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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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울창창 숲이 전하는 여름으로의 초대장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는 숲길
‘임진성길’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이 있는 코스이다. 대개 성곽들이 높은 지대에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길은 해안보다는 주로 산길로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성곽을 따라 돌면서 옛 선인들의 애환이나 진한 향기를 느껴볼 수 있다. 풍전등화, 국운의 쇠락을 막고 나라를 지키고자 선조들이 준비했던 성내 우물과 환석 망루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두 세개의 높고 낮은 산을 넘거나 산허리 동그란 길을 절묘하게 돌아서 빠져 나간다. 너덜겅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임도의 오름길을 재촉하면서 이 코스가 자랑하는 숲의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곳에 등장하는 산들은 지도상 표기는 봉전산(191m) 조산(216m) 천황산(394m)으로 돼 있다. 특히 수 억년 전 형성된 초대형 너덜지대 그리고 그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정자에서의 쉼은 시공간을 관통하는 여유로움의 상징이다. 쉼터에서 바라보는 남쪽의 오션 뷰는 어느 곳에 내좋아도 손색이 없다.

섬 지역임에도 수령이 오래된 수목들이 울울창창 들어차 거대한 밀림지대를 연상케한다. 1960∼1970년대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편백숲 낙엽송숲길은 걷는 것도, 보는 것도 숨이 가쁘다. 이국의 고산지대 자연에 와 있는 듯 한 착각이 든다고 말하면 진부할까. 실제 이국적인 정취가 난다.

숲이 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파크 인근 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된 장항숲은 마을에 불어닥치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화덕피자와 수제비를 판매하는 숲카페와 가게는 적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등극한지 오래다.

▲남해바래길 12코스

남해스포츠파크 서면보건지소 출발→서면 장항숲 및 해변→너덜지대 쉼터 정자→천왕산 임도→임진성→오리마을→평산마을 작은미술관 도착=총길이 13.5㎞/3시간 40분∼4시간 40분소요

 
바닷가 해안을 따라 조성한 장항숲
9시를 조금 넘은 시간, 남해스포츠파크 내 서면보건지소가 출발지다. 붉은 아치형 교량을 건너 장항마을해안 숲길을 따른다.

안면 있는 숲은 ‘물건항 방조어부림’을 쏙 빼닮았다. 하지만 이 숲은 수목의 그림자가 바다에 드리워져 바다고기의 산란장역할을 하는 방조어부림과는 성격이 다른 ‘방풍림’이다. 장항어촌계에서 양식어장에 대한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숲속 카페인 헐스밴드, 더풀 등에는 화덕피자와 수제비버거, 분식점이 성업중이다. 인터넷 덕에 주말에는 전국에서 많은 손님들이 찾아온다. 여름철 숲 이용시 2시간에 1만원의 사용료를 내야한다.

출발 30분 만에 길은 장항마을 뒷산으로 올라간다. 이번에는 임도 양쪽에 편백숲과 낙엽송지대가 반긴다. 숨쉬기가 한결 편해진 것은 마스크를 벗은 이유도 있지만 코로나가 사그라지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다.

철 지난 아카시아꽃이 아직 특유의 강한 향기를 뿜어내서 그 향기를 담으려 큰숨 들이키기를 수차례, 그건 욕망에 찬 쉼 호흡이다. 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해발을 자랑하는 400m 천왕산 허리를 도는 임도는 서상∼덕월마을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다.

1시간 10분정도 지났을 때 두 세개의 초대형 너덜지대를 가로지른다. 산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너덜을 관통해 임도를 내고 그 사이에 정자를 세웠다. 너덜에 다가가 바위들을 만져볼 수 있다. 이 바위들은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이 이곳에 그대로 있었던 태고의 상징물, 수억년 세월이 빚은 작품, 성글게 서로 얽혀 있어도 무너진 적이 없다. 가까운 바다 뷰는 그럴듯한데 안개 탓에 여수 등 원경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쉬움이다. 오름길의 끝이 고실치, 넘어가서 남구마을까지는 고도를 차츰 떨어뜨린다.

숲길을 내려와 남해 우리교회 앞을 통과해 출발 2시간 만에 남구마을 앞 도로를 걷는다. 남구마을 남서대로를 타고 가다가 앞산 오르기 전 배당소류지 부근에는 과거 성냥간(대장간)이 있었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이곳에선 농사일에 필요한 도구인 쟁기와 낫 괭이를 주로 다뤘던 곳이다. 바래 가는 여인들의 호미도 주품목이었을 것이다.

 
수억년 된 너덜지대

 

남구마을에서 눈 위로 보이는 야산이 임진성을 품고 있다.

남해임진성(南海壬辰城),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민관군이 힘을 합해 축성한 이른바 민보성(民堡城)이다. 경남도 기념물 제20호로 내성 크기가 1만 6460㎡ 밖에 안 되고 축성길이도 300m에 불과해 마치 일반적인 크기의 성을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같다.

축성기법 상 연대를 통일신라 때 것이라고 하는데 내부에서 어골문 조개무지 기와조각이 출토돼 고려시대에 무너진 성벽을 다시 수축한 것으로 보인다. 왜적에 맞서기위해 준비한 10~20㎝ 크기의 투석용 석환, 요즘말로 짱돌 3000개가 출토됐다.

석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제일 먼저 병사들이 사용한 생명수를 담은 집수정이 나온다. 고지대에 고여 있는 물이 신기한데 용출샘이 아닌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다.

임진성
임진성 집수정
과거 임진성이 위치한 평산만을 옥포라고도 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대승했던 거제도 옥포로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전보가 날아들어 남해 옥포로 오인한 주민들이 관군과 힘을 합해 이 성을 쌓았다고 전한다. 잘못된 정보가 궁극의 군요충지를 추가한 격이다.

출발 3시간 만에 오른쪽에 아난티 남해CC, 왼쪽에 남해해성중·고교를 지나 평산마을 영역으로 들어간다.

사립인 해성중학교는 1948년 9월 남면 선구리에서 해성중학원으로 출발했다. 교명 해성(海城)은 ‘바다 가운데 성’이라는 의미, 1920년대 해성소년단이 기원이다. 특성화 교육으로 독서·토론교육, 영어몰입교육, 농산어촌 연중 돌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점심시간께 교사들로 보이는 몇몇이 오리장림 사잇길을 걷고 있었다.

성리학의 대가 ‘전(傳)백이정 묘’가 바래길 인근에 있다. 옛날 남해 삼동면 지족리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총각 백씨가 길 잃은 처녀와 부부연을 맺은 뒤 대문 달린 큰집을 짓고 딸아들을 낳고 알콩달콩 살았다. 어느 날 부인은 자신이 서울 출신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아들을 친정 부모 즉 외가에 보내 수학하도록 했다. 영특했던 이 아들은 훗날 ‘연거시’, ‘영당요’를 저술한 고려 문신 백이정이다. 백이정의 아버지가 대문 달린 큰집을 짓고 살던 곳이라 해 이 지역을 ‘대문골’이라고 불렀다. 대문골에는 아직 백이정이 심은 정자나무가 있다고 한다.

특별히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골프장과 펜션 그랜드빌라촌 등은 이 지역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평산마을 앞바다에는 관선도와 마도 대마도 목도 등 고만고만한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관선도는 과거 먼 바다에 나갔던 어선들이 왕래했던 거점시설이었다. 지금은 방파제로 연결돼 섬의 기능을 잃었다.

 
도착지 평산마을
3시간 30분 만에 평산마을에 도착한다. 남면해안도로 끝 지점인 이 마을은 인근에서 가장 큰 포구다. 감성돔 볼락 농어 낙지문어 등 각종 어류집산지로 횟집이 즐비하다.

이 작은 평산에 8경이 있다. 바닷가 바위와 석벽을 고둥껍데기에 비유한 나산기암, 불야성을 이룬 고깃배 호두어화, 작지만 아름다운 섬 죽도청풍, 마도에 부서지는 파도 마도파성, 고고한 자태의 백로떼 성수야학, 망치산 달 밤, 망치야월, 관선도 소나무 관선노송, 해성고교 앞 오리장림이 그것이다. 보건소를 새 단장한 바래길 작은 미술관이 차려져 있다. 전시공간이 부족한 화가들의 문화공간역할을 하고 있다.

김윤관기자

 
 
아난티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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