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그리운 골목길
[경일춘추]그리운 골목길
  • 경남일보
  • 승인 2022.05.2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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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골목길은 아이를 키웠고 아이는 골목길을 지켰다. 마을을 벗어났다가도 골목길 근처에만 오면 안심이 되었고 뒷산 여우가 캑캑거려도 그곳에 들어서면 무섭지 않았다. 정갈히 쓸려진 골목길 감꽃타리는 아무나 주워가도 괜찮았고 돌담 위 홍시는 눈치 보지 않고 따먹어도 마음 편했다. 예전엔 술에 취한 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저씨의 화풀이 길이 아니길 원했고 짓궂은 아이들이 막대기로 길고양이를 쫓는 시퍼런 공포의 길이 아니길 바랐다. 꼬마들이 사방치기와 구슬치기를 하고 자치기를 하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길 소망했다. 아이를 찾는 엄마나 형, 누나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울려 퍼지길 꿈꾸었다.

이웃 간 정은 골목길에서부터 든다. 고모가 밟고 갔던 길은 가을 향기가 있었고 누나가 놀다가 시집 간 그 길은 언제나 봄 햇살이 따뜻했다. 부러진 숟가락, 떨어진 흰 고무신을 엿장수가 훑어 간 그 길에는 달콤한 냄새가 넘쳐났고 집배원 아저씨의 따르릉 자전거가 지나가면 볼 붉은 아가씨는 까닭 없이 담 넘어 얼굴을 내밀었다. 정신없는 씨암탉이 골골거리며 버리듯 그곳에 알을 낳으면 철모르는 아이는 구렁이 알이라며 나무꼬챙이로 들어다 대밭으로 던졌다.

골목길은 아련한 추억 길이다. 바람이 통과하고 삶의 이야기가 묻어난다. 사람이 사는 데라면 어디에나 골목이 있기 마련이다. 골목길은 큰 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을 말한다. 골목은 좁다. 좁다는 것은 이웃하고 있는 사람끼리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물론 은밀한 것까지 조금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집 큰아이 생일이 언제인지, 오월에 돌아오는 옆집 기제사는 무람없이 모셔도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골목길이 주는 기억은 다양하다. 의미심장함과 묘함의 의미가 응축된 비밀스런 곳이기도 하다. 나서는 곳이자 밟아 돌아오는 곳이며 만남과 헤어짐이 매일같이 이어지는 삶의 현장이다. 시골이라면 어디 할 것 없이 어느 날인가부터 한 집 두 집 빈집이 늘어나더니 종내 사람이 사라지고 담장이 무너지면서 아예 골목길 자체가 사라졌다. 감꽃 향기 심심하던 골목은 어둠과 적막 속에 잠겼다. 달이 뜨고 별이 지나던 그 곳은 휑하니 빈 바람만 울어 분다. 세상이 바뀌고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가 들어섰지만 텅 빈 골목길에 아이들의 웃음소리 어른들의 이야기 소리가 채워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 드물다. 골목상권을 살리고 재래시장에 사람이 오게 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골목길이든 아이들 웃음소리를 살려내는 것이 먼저다. 젊은이에게 미래를 꿈꾸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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