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30]거창사건추모공원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30]거창사건추모공원
  • 경남일보
  • 승인 2022.05.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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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그늘에 서린 아픔 위로하는 시간
추모공원 중앙에 세워놓은 위령탑
거창사건추모공원 입구인 추모문


◇거창양민학살사건

거창군 신원면 양민 719명이 학살된 거창양민학살사건은 1951년 2월 국군에 의해 자행된 천인공노할 사건이다. 제11사단 최덕신 사단장은 인민군이나 빨치산이 주민들로부터 식량을 확보하거나 인력과 물건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산간벽촌의 물자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가옥을 파괴하는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제9연대 3대대장 한동석은 신원면으로 들어와 2월 9일 청연마을에서 주민 84명을 학살했고, 2월 10일 주민 100명을 탄량골 하천 계곡에서 학살했다. 2월 11일 와룡리·대현리·중유리 일대 마을 주민 1000여 명을 신원국민학교에 모두 모이게 한 후 군인과 경찰·공무원 가족을 돌려보내고 다음날 517명을 박산골에 끌고 가 총살했으며 기타지역에서 주민 18명을 학살했다. 당시 총살당한 주민은 15세 이하 어린이가 359명, 16~60세가 300명, 60세 이상 노인 60명(남자 327명, 여자 392명)으로 총 719명이다. 후한이 두려웠던 한동석은 신원면 일원에 계엄령을 내려, 이방인 출입을 막고, 어린이 시체는 골라내어 학살 현장에서 약 2㎞ 떨어진 홍동골 계곡으로 옮겨 암매장하여 은폐를 하고, 공비와 전투를 하여 희생자가 발생된 것으로 왜곡을 했다.

거창양민학살사건은 1951년 3월 29일 거창 출신 신중목 국회의원에 의해 국회에 폭로되고, 1951년 3월 30일 국회와 내무·법무·국방부의 합동진상조사단이 구성되어 신원면 사건 현장으로 오던 중 길 안내를 맡은 경남 계엄민사부장 김종원 대령은 신성모 국방장관과 사전에 모의하여 군인을 공비로 위장 매복시켜, 거창읍에서 신원면으로 통하는 험준한 계곡의 길목인 수영더미재에서 합동진상조사단에게 일제히 사격을 가해 조사단을 되돌아가게 하는 등 국방의 의무를 진 군인으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거창사건추모공원 사이트에서)



 
벽에 새겨놓은 부조를 설명하는 해설사


◇역사의 그늘을 찾아 떠난 순례

멀구슬문학회는 작가 김원일의 ‘겨울골짜기’의 배경무대인 거창양민학살사건의 현장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거창사건추모공원’을 답사하기로 했다. 역사의 그늘을 찾아 그늘에 서린 아픔의 시간을 더듬으면서 그 그늘의 자취를 위무하고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거창군 신원면으로 떠났다.

추모공원 입구인 추모문에 도착하자 역사해설사 김주희 선생님께서 반갑게 필자 일행을 맞이해 주셨다. 영령들을 하늘로 인도한다는 천유문 앞에서 5만 평 가까운 규모의 추모공원 조성 과정과 각종 시설, 탐방 순서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위패봉안각-위령탑-희생자묘역-역사교육관-바람개비 체험활동-박산합동묘역-바람개비 헌정-탄량골 희생장소·박산골 희생장소 순례 순으로 탐방하기로 했다.

추모공원 중앙에 위치한 위령탑에 도착하자마자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는 묵념부터 올렸다. 위령탑의 형상은 희생된 남자, 여자, 어린이의 무덤을 상징하는 3단의 돔 사이로 영혼이 부활하여 어둠을 뚫고 하늘로 오름을 상징한다고 해설사는 설명해 주었다. 탑 왼쪽엔 국군들이 영령들과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표현한 군상이 있었고, 오른쪽엔 후손들의 정성어린 위로 속에 한을 풀고 승천의 기쁨을 만끽하는 영령들과 유족들을 표현한 군상이 있었다. 충혼탑 아래 있는 보도블록 양쪽에다 나비 날개 모양의 연못 두 개를 조성해 놓았다. 희생자들의 영혼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천국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놓았다고 한다.



 
 
추모공원 내의 합동묘역


높이 4m, 길이 70m의 부조벽엔 희생당한 분들이 한을 풀고 승천하여 평안하기를 비는 마음을 다섯 마당으로 구성하여 표현해 놓았다. 벽에 새겨놓은 부조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일행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을 드러냈다. 부조벽 위쪽에는 희생자묘역이 있었다. 까만 빗돌 앞에서 멈춰 선 필자는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갓난아기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669기의 무덤(제2묘역에 50기 안장)을 보면서 함께 간 일행들도 말을 잃었다. 흐려진 안경렌즈가 맑아졌을 무렵에 묘역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전쟁이란 누가 이기고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고 끝나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역사교육관으로 이동했다. 먼저 거창사건 관련 동영상을 시청한 뒤, 8개의 테마로 나누어 전시한 전시실에 대한 설명을 해설사로부터 듣고, 희생자들에게 헌정할 바람개비를 만들기 위해 체험실로 갔다. 어린 시절 자주 만들었던 바람개비인데도 자꾸만 헷갈렸다.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한과 아픔이 필자의 뇌리에 떠올라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다. 각자 두 개씩의 바람개비를 만들어 추모공원 건너편에 있는 박산합동묘역으로 향했다.



 
군사쿠테타 세력에 의해 훼손된 위령비


◇훼손된 채 쓰러져 누운 위령비

쓰러져 누운 위령비와 무덤 2기가 필자 일행을 맞아 주었다. 5.16쿠테타 세력이 유족회 간부를 반국가 단체로 몰아 투옥 시키고, 묘역을 파헤쳐 유골을 개인별로 묻으라고 한 뒤 위령비의 글자들을 정으로 지워서 땅속에 파묻는 만행을 저지른 현장이다. 지금은 역사가 바로세워졌지만 희생자를 빨갱이로, 유족들을 반국가 단체로 누명을 덮어씌웠을 당시에 그분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생각을 해보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참배를 드린 뒤 추모공원 묘역으로 가서 노랑 바람개비를 헌정했다.



 
직접 만든 바람개비를 헌정하는 회원들
추모공원에 헌정할 바람개비를 만드는 회원들


준비해 간 김밥을 휴게실에서 먹은 뒤, 탄량골학살지와 박산골학살지를 순례했다. 박산골학살지에 남아있는 총탄흔적바위를 보자, 역사의 그늘이 몽쳐 구멍을 이룬 탄흔이 필자의 가슴속을 숭숭 뚫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고 그늘진 역사를 되새겨 그 그늘을 양지로 돌려놓는 일이야말로 참되고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다시는 이런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안고 발길을 돌렸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거창사건추모공원 전경
거창사건추모역사교육관
박산합동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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