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인 (문화해설사)
‘중용’은 기계적 중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 철학적 개념으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것이 ‘중(中)’이고,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용(庸)’이다.
1970∼1980년대 대학가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말 중에 ‘회색분자’라는 말이 있었다. 좌와 우 어느 쪽도 아니라 무난한 처세술인 것 같지만 때로는 약삭빠른 기회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닌 어중이떠중이 취급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2022년 오늘의 우리 사회는 회색지대마저 없어지고 오직 흑과 백만 존재하는 이분법의 사회로 변했다.
통제되지 않는 1인 미디어시대는 이러한 편향성을 부추겨 가짜를 진짜처럼 속이다 나중에는 신념으로 만들고 끝내는 진리로 둔갑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남에게 보여주는 말과 글에는 철저한 자기 검열을 통한 책임 의식이 있어야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아니면 말고’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이다. TV 신문 유튜브 개인SNS 등에서는 버젓이 자극적 단어로 관심을 끌기 위한 처절한 경쟁만 벌이고 있다.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만 하는 교수나 언론인마저도 공개적으로 당당히 아군과 적군을 구분한 발언을 한다. 상대에 대한 논리적 설득은 필요치 않다. 오직 내편에게 카타르시스만 느끼게 하면 된다는 식이다. 과연 이러한 절반의 성공을 우리는 성공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작금의 상황은 난세를 이끌어갈 어른이 없는 시대라 고전에서나마 그 가치를 되새겨보자.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아야 한다.(言顧行, 行顧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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