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고무신
[경일춘추]고무신
  • 경남일보
  • 승인 2022.05.2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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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대 (수필가)

이덕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가 흔들린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환란 극복을 위해 각국이 유동성을 과도하게 풀면서 인플레이션 공포가 엄습하자 대부분의 국가는 금리를 인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 당사국의 밀이나 천연가스 등 자원수출이 중단되자 몇몇 국가는 생필품 가격통제가 불가능해지고 일부는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해 있다. 대량생산에 의한 풍요의 시대에 궁핍의 암운이 드리워진 것이다. 전쟁, 가난하면 선연하게 떠오르는 것이 고무신이다. 가난은 고통이고 불편이지만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선물이기도 하다. 풍요의 신(神)은 쾌락을 선사하지만 부족의 신은 고뇌를 가져다준다. 그 고뇌는 종국에 인간을 신으로 만드는 기적이 되기도 한다.


한국전쟁이 막 끝나고 폐허를 딛고 선 세대는 부족이 일상이었다. 먹는 것은 물론이고 입을 옷도 신을 신도 마땅치 않았다. 무명이나 삼베로 옷을 지어 입었고 짚신이나 나막신을 만들어 신었다. 가난했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외래문물은 거침없이 밀려들었다. 고무신도 그 시절에 대중화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무신은 세상의 거대한 변화 끝에 주어진 풍요이자 가난이었다. 자연재료로 집에서 만들던 신발이 기계에 의해 만들어져 공급되었다는 것은 세상이 달라졌다는 신호다. 우리세대는 고무신 세대다. 운동장에서 공을 찰 때도 새끼줄로 고무신을 꽁꽁 묶고 뛰었다. 짚신을 신은 이도 있었고 베 신을 신은 이들도 있긴 했다. 지금은 물놀이를 가거나 시골 어른들이 가끔 신는 것에 불과하지만 한 때는 생활필수품이었다.

요즘도 오일장이나 읍내 신발가게에 가면 고무신을 판다. 꽃무늬로 장식된 신발은 멋진 패션 같아 보인다. 수더분하면서도 투박한 옛날 검정고무신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고무신은 일회용품이 아니었다. 닳고 닳아 더 이상 쓸 수가 없어지면 마을을 돌아다니는 고물장수가 비누나 생활용품으로 바꾸어갔다. 엿장수도 낡은 고무신을 즐겨 받았다. 선물로도 훌륭했다. 오죽했으면 선거마당에서도 표를 달라며 고무신을 돌렸을까. 검정고무신은 이런저런 추억거리를 남기고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져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세계의 자원전쟁이 얼마나 심각해질지 불을 보듯 뻔하다. 암울한 궁핍의 시대가 다시 올지 모른다.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무신 추억이 떠오른 것은 아직도 한국전쟁 후의 가난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지방선거다. 막걸리 한 사발이든 고무신 한 켤레든 선물을 돌리던 후보에게 표를 팔았던 때가 생각난다. 고무신이 민의(民意)를 훔쳐가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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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병 2022-06-21 16:49:15
요즈음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한때는 군대간 남자친구의 군생활 전념을 응원하고 굳건한 우정을 지키겠다는 취지로 여자친구들이 곰신이라는 모임도 있었지요. 적어도 남자친구의 군생활 동안은 고무신 꺼꾸로 신지 말자는 뜻으로...
고무신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네요. 고무신과 우크라이나 전쟁, 가난했던 지난 시절을 엮어 온고지신을 얘기해주신 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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