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22)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22)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6.0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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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산다는 것은 누구랑 무엇이랑 자꾸자꾸 만나고, 그리고는 자꾸자꾸 헤어지고, 그러는 거지요.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짼하고. 한용운 선생은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하셨지만 헤어짐에는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이별이 잘골번도 더 많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시인 폴 포르처럼 멋진 ‘이별’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저 멀리 바닷가로 나아가 조용히 이별의 입맞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별의 징표로 이 손수건을 흔들어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흔들어 줄 ‘이 손수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입니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다짐하는 ‘진달래꽃’보다는 말입니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사람. 이 사람은 한없이 끝없이 그리움을 남깁니다. 이제 그만 해야지, 그만해야지 다짐하면, 더 그리워지지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래도 또 한 번 다시 더 한번’ 김소월 선생처럼 ‘그립다’ 그 말이라도 자꾸 해야 숨을 쉴 수 있는 사람들, 이 세상엔 그리움에 가슴 앓는 사람이 쌔고 쌨지요.

그런데 어떤 이는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버립니다. 잘 있어요 잘 가세요. 손수건 흔들어주는 일도 없이, 떠나는 사람은 너무 사랑하여 차마 간다는 말 한마디 못 하여 안가는 척 가고, 남은 사람은 그 사람이 언제 왜 가는지도 모르고.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없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참 허망한 이별이지요.

‘잘 있어요.’ 무심히 달력을 쳐다보았더니 오월이 손 흔들어주지도 않고 집게손가락 끝에 치맛자락 살짝 올려잡고 한들한들 뒷모습이 가고 있습니다. 가지 말라고 붙잡았으면 ‘제 구태여 가랴마는’ 붙잡기는커녕 오월이 언제 내게 와 있었는지 그도 모르고 있었으니, 속절없습니다.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그저 ‘모란’이라도 원망해볼까요.

생각해보면 오월은 사람 냄새가 나는 달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 일하는 자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 이라는 노동절을 비롯하여, 아이들을 사랑하라는 어린이날도, 어른이 되는 성년의 날도 있고, ‘이 몸이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부부의 날도 오월에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어버이 살았을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한탄하게 하는 어버이날이 있어서 그나마 돌아보면서 울어라도 보는 ‘불효자는 웁니다’도 있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세종대왕의 생일을 기리는 스승의 날도 오월에 있지요. 그러고 보면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 인연의 세상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오월이 내게는 흔들어 줄 손수건 한 장 안 주고 가버렸네요. 하긴, 옆에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장미꽃 수놓아 손수건 한 장 주고 갈 오월이, 아무리 가슴이 대천 한바다 같다 한들, 그럴 오월인들 어디 있겠습니까? 또 이렇습니다. 나는 오월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묻기도 민망합니다. 아마도 현대를 사느라고 파란 하늘도 푸른 들도 보지 못하는 나는 포모 사피엔스가 된 탓이라고. ‘너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시민이었다’는 윌터 페이터의 말을 빌려서라도 슬프게도 변명을 해봅니다. 오월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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