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임금이 내리던 선물, 소고기 육회
[경일춘추]임금이 내리던 선물, 소고기 육회
  • 경남일보
  • 승인 2022.06.0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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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우리 민족의 소고기 사랑은 그 역사가 장구하다. 1976년 12월 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리 옥녀봉 남쪽자락 향금산이라는 구릉에서 발굴된 고구려의 유적에는 다양한 벽화와 함께 묘지명도 발견됐다.

묘지명에는 ‘무덤을 만드는 데 만 명의 공력이 들었고, 날마다 소와 양을 잡아서 술과 고기, 쌀은 다 먹지 못할 정도’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소고기를 즐겼고 조선시대 ‘소 한 마리에서 백 가지 맛이 나온다’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미각을 지녔던 것 같다.

양지는 앞가슴부터 복부 아래 부분 살. 사태는 다리 부분의 살. 등심은 목 부분에서 허리에 이어지는 살. 안심 갈비 채끝살 우둔살, 홍두깨살 등이 있다. 금수령으로 도축이 금지된 조선시대에도 양반 사대부들은 소고기를 즐겨 먹었다. 소고기 중에서도 육회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조선의 숭유정책으로 사대부들이 육회의 맛을 향유한 것이다.

유교 경전 중 사신을 접대하는 예절을 모아놓은 ‘공식대부례’(公食大夫禮)편에서는 손님을 대접하는 사치스럽고 좋은 음식으로 육회를 올렸다. 성대하게 차려지는 가찬(加餐)의 음식이었다.

공자도 육회를 즐겼다. 유몽인의 ‘어유야담’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조선에 주둔하던 중국 군사들이 우리의 육회 문화를 보고 더럽다고 침을 뱉자, 한 선비가 이르되 “논어에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했고 그 주석(註釋)에도 짐승과 물고기의 날고기를 썰어 회를 만들었다고 했다. 공자께서도 일찍이 좋아한 것인데 어찌 그대의 말이 그렇게 지나친가?”하였다 한다.

육회는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선물이기도 했다. 조선후기 각 관청의 직무 등의 규정을 수록한 ‘육전조례’에는 임금이 신하들에게 육회와 전유어, 편육, 탕, 과일, 초장, 겨자 각 1그릇씩을 내렸다.

서양의 육회는 다짐육에 올리브유와 소금으로 간을 한다. 타타르 스테이크(tartar-steak)다. 우리의 육회보다 몇 배 비싼 고급 요리다.

당일 도축된 신선한 육회는 구이에 비해 소화흡수가 빨라 노인들의 장수식으로 알려져 왔다. 진주의 육회문화는 과거 진주가 누렸던 풍요의 상징이다. 진주비빔밥이 꽃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육회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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