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아는 만큼 보인다’의 함정
[경일춘추]‘아는 만큼 보인다’의 함정
  • 경남일보
  • 승인 2022.06.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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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인 (문화해설사)
민영인


열하일기로 잘 알려진 연암 박지원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조선 후기 문장가 유한준(1732∼1811)은 “사랑하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의 시원(始原)이 되는 글을 쓴 사람이다. 그가 1795년(정조 19)에 쓴 ‘석농화원발(石農畵苑跋’에서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며 보면 쌓아두게 되니 그저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之)”라고 했다. 이 글을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인용하면서 인구에 회자 되는 명문이 됐다. 여기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해석하면 ‘아는 것만 보인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많이 보고 배워서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교훈성의 글귀이다.

또 주역의 ‘계사전 하3장’에서는 “천하가 돌아가는 곳은 같은데 가는 길은 다르고, 모두 하나에 이르는데 고려하는 것은 아주 다양하다(天下同歸而殊塗 一致而百慮)”며 일치보다는 차별성,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치나 대인관계에서도 아는 것만 보는 함정에 빠진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만 익숙하여 편안해하며 자신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 분야에 더욱 애착을 갖고 집중할 수밖에 없어진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잘 드러나지 않아도 훨씬 더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들이 많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는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들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나 박사라고 해도 자기가 성취한 그 분야에서만 인정받는 것이지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우친 자들은 아니다. 쉽게 지칭하는 말로 팔방미인 만물박사 두루백군 등이 있지만 사실상 넓으면 얕고 깊으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수장들이 특정 부류의 인재들이 마치 세상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착각이고 환상이며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사회, 보다 선진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열린 사고가 요구된다. 목소리 큰 소수가 여론을 주도하고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는 건전하고 건강한 집단지성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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