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1915년 진주 삼도정육점과 시장비빔밥
[경일춘추]1915년 진주 삼도정육점과 시장비빔밥
  • 경남일보
  • 승인 2022.06.1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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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일제강점기부터 육회비빔밥은 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전 세계적으로 육회를 밥과 같이 먹는 문화는 진주비빔밥이 유일하다. 그만큼 진주비빔밥은 특별한 역사의 산물이다.

꽃밥이라고 한 것은 황금색의 둥근 놋그릇에 여러 가지 계절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상의 아름다운 꽃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주비빔밥은 보탕과 그 위에 붉은 엿고추장, 특히 쇠고기 우둔살을 잘게 썰어 깨소금, 마늘, 참기름 등으로 양념한 육회를 반드시 얹어 먹는다.

‘동국문헌비고’에 따르면 진주 우시장은 18세기에 이미 개설되어 있었다. 2일과 7일에 열렸다. 경술국치 후, 조선총독부는 한우 사육현황과 관리를 체계적으로 실시하여 축우개량사업을 전개해갔다. 북부지방의 우량 수소를 남부지방에 보급하고, 암소를 농민에 빌려 주어 번식하게 하는 등 사육두수 증가 정책을 폈다. 소의 사육두수는 1910년 전까지 60만 마리였던 것이 1920년에는 150만 마리로 2배 이상 증가하였다.

개량 한우는 가격이 저렴했다. 양반의 점유물이던 소고기가 서민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1934년 11월 12일자 ‘조선중앙’에는 열 달 간 흥남시민이 먹은 소가 1000두(頭)에 달해 호화호식을 자제하자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15년 1월 10일, 진주에 개량소고기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삼도정육점(森島精肉店)’이 문을 열었다. 엿새 후에는 개량소고기가 호평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1934년 진주의 소고기 가격은 등급별로 100몸메(일본식 단위 1=3.75g)에 각 20전, 25전, 30전이었다. 20전 100몸매면 육회비빔밥 수십 그릇을 만들 수 있었다. 1929년 ‘별건곤’ 잡지의 기사대로 비빔밥 한 그릇에 10전이라는 헐한 값에 팔아도 남는 장사였다.

진주의 시장비빔밥은 삼도정육점의 개점 시기와 맞물린다. 별건곤보다 앞선 1923년 개벽지에 차상찬(車相瓚, 1887~1946) 문화운동가가 진주의 명물인 비빔밥을 먹었다는 기행문을 썼다. 1964년 대형화재로 시장 점포들이 잿더미가 되기 전까지 비빔밥과 냉면은 진주의 관광 인프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81년 제5공화국이 대국민 화합차원에서 개최한 ‘국풍 81’행사 전까지 비빔밥의 대명사는 진주였다. 진주의 자랑거리인 육회비빔밥의 가치와 맛을 홍보하는 데 새롭게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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