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을 가다 [6]앵강다숲길(10코스)
남해 바래길을 가다 [6]앵강다숲길(10코스)
  • 김윤관
  • 승인 2022.06.16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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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거니 뒤서거니...앵강만 품에 안고 벼랑길 완보
 
아름다운 해변길
앵강다숲길은 ‘꾀꼬리 눈물 강’이라는 감성적인 이름을 가진 앵강만 해안을 따라간다. 코스 중간중간에 금모래 흑진주자갈이 깔린 해수욕장이 줄지어 있고 바다쪽에 석방렴을 비롯한 노도와 섬들, 내륙쪽에 걸출한 암봉 호구산이 버티고 서 있다.

이 길을 걷다보면 이 풍경들이 시시각각 장면을 달리하며 사라졌다가 되살아나기를 거듭한다. 호수처럼 잔잔한 ‘꾀꼬리 눈물강’, 어째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됐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다. 그곳에 격동기를 살았던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 노도가 있다. 그는 충렬공 김익겸의 아들로 조선 왕조와는 사돈간이었던 인물이다. 요즘으로 치면 금수저에 해당한다. 타고난 배경을 바탕으로 훗날 공조판서, 대제학 등 고관대작을 지냈다. 숙종 15년(1689)에 관직이 박탈돼 노도에 위리안치 됐다.

이 코스와 함께하는 호구산(618m)은 금산 설흘산 망운산과 함께 남해를 대표하는 산이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데 한자 원숭이 납 ‘납산’이라고도 부른다. 그 품에 금산에서 옮겨온 것으로 알려진 명찰 용문사가 있다. 폐교된 성남초교 앞에선 옛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았던, 아련한 공상을 해볼수 있다.

이 외 신전마을 해안방풍림과 해안선, 해수욕장, 유럽의 고성과 비슷하게 지은 숙박시설 건물 등이 앵강다숲길을 빛내는 자연물이다.
▲남해 바래길 10코스
가천다랭이마을 바다정자(암수바위)출발→홍현해라우지마을→두곡·월포해변→미국마을→용문사임도→화계마을→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총길이 15.5㎞/휴식 및 점심시간 포함 4시간 30분∼5시간 소요.
 
벼랑길

 

▲9시 38분, ‘다랭이마을 암수바위’에서 출발해 응봉산에서 내려온 물길을 따라 바다쪽으로 내려간다. 해안 논길 끝에 서면 발밑에 앙증맞은 미니 몽돌해수욕장이 파도를 맞고 있다. 해수욕은 불가하나 물이 빠질 때 고둥과 소라를 잡을 수 있어 관광객들이 내려간다.

왼쪽으로 틀어 10분 정도 진행하면 거대한 벼랑 아래로 길이 이어진다. 자연지형을 이용해 만든 길인데 머리 위에도 낙석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낭떠러지 발아래에도 흰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가 오금을 저리게 한다.

햇살이 따갑다고 느껴질 때 칡넝쿨 동굴로 들어간다. 그 후로 10여분 정도는 그늘로만 걸을 수 있다. 파도가 수만년 동안 해안절벽을 줄기차게 때려 동굴이 된 협곡을 우회하듯이 돌고, 군 소대급 장병들이 주둔할 수 있는 폐 소대초소, 그보다 작은 분대초소를 차례대로 지난다.

출발 1시간 만에 닿은 홍현해라우지마을 해안에서 석방렴을 만난다. “석방렴에서 통발로 문어를 잡았다”며 요리를 준비하는 주말 캠핑족, 그의 표정은 연신 싱글벙글했다.

석전(石箭) 또는 석제(石堤)라고도 부르는 석방렴은 바다에 돌담을 쌓아 밀물과 썰물의 자연적 원리를 활용해 오징어 멸치 새우 전어 기타 잡어를 잡는다. 남해사람들이 바래를 조금 더 쉽게 하기 위한 방편인데 원시어법이라해도 바위 밑에 직접 손을 넣어 잡는 것보다는 원리를 이용한 진일보한 고기잡이다.

길은 남해자연맛집 남해전복영어조합법인 앞으로 이어진다. 지인인 대표이사의 배려로 양식장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수조에는 싱싱한 전복 해삼 멍게 등 양식한 각종 해산물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안을 떠나 송림을 가로질러 남해 남성초등학교터 앞으로 향한다. 이 학교는 1964년 10월 7일 개교 후 1994년 3월 1일 폐교할 때까지 30년 동안 졸업생 817명을 배출했다. 현재 대성그룹 남해연수원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에는 시골에도 아이들이 많아 어디든 시끌벅적했었다. 운동회나 소풍가는 날, 아이들과 마을어른들, 선생님과 함께 어울려 잔치집 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냈을 교정이다. 담장에 손을 얹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이들 깔깔거리는 소리,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솜사탕 같은 달콤한 상념(想念)이 깨진 건 폐교 옆 수로를 지날 때였다. 화사 혹은 꽃뱀이라고 부르는 시골의 흔한 뱀 유혈목이 등장에 놀랐기 때문이다. 유혈목이가 콘크리트 수로에 빠져 오도가도 못 하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 녀석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독을 가진 뱀. 깊게 물리면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손으론 안되고 스틱으로 몸통 중간을 걸어 자치기 하듯 밖으로 내던져야했다. 생전 처음 하늘을 날아간 꽃뱀은 칡넝쿨 숲으로 떨어졌다. 곧 나타나는 3층짜리 언덕 위에 아름다운 집은 폐교의 새주인 대성그룹 영빈관이었다.

바래길은 산과 언덕을 돌아 다시 해안으로 내려간다. 출발 2시간 만에 이 코스 최고의 아름다움, 월포·두곡해수욕장으로 다가간다. 완곡한 해안선을 따라 깔려 있는 깨끗한 모래, 잔잔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 목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가는 시원한 바람…, 파도에 밀려와 뿌리를 내린 미역과 파래가 해안의 조형성에 초록 색감까지 더한다. 미끄러지듯 소리없이 들어온 비취빛 승용차, 그곳에서 내린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정수리에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는 꼭두섬에서 월포·두곡 해수욕장은 끝이 난다. ‘머리꼭대기섬’ 으로 해석할 수 있는 꼭두섬은 주민들이 방파제로 연결하면서 육지가 돼버렸다.

길은 마을 언덕으로 연결된다. 미국마을은 미국의 문화와 전통주택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에게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실직적인 인구 유입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부의 지역특화발전특구법에 따라 군에서 차별화된 사업을 했다. 목재로 된 미국식 주택 21동과 복지회관 및 체육시설들을 조성해 마치 미국마을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뒤돌아보면 내륙쪽에 호구산이 다가와 있다. 남해를 대표하는 호구산(618m)은 1983년 11월 송등산과 함께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정상부분이 거대한 암봉으로 돼 있다. 남해사람들은 호구산(虎丘山)이 주는 어감 때문인지 그렇게 부르지 않고 한자 ‘원숭이 원’을 써서 원산(猿山), 납산(猿山)이라고 부른다. 납(猿)은 원숭이의 옛말이다.

반농반어인 화계마을의 느티나무는 올해 꼭 590년이 됐다. 사람들은 이 나무의 잎이 피는 위치와 모양에 따라 한해 농사를 점쳤다. 바다쪽으로 뻗은 가지에서 새잎이 먼저 돋으면 풍어, 육지쪽 새잎이 먼저 나면 풍년을 점쳤다. 고사하지 않는 한 이러나저러나 풍어·풍년이니 이 나무는 마을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600년을 살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전직 아나운서출신이 귀농한 뒤 앞마당에 심은 대추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기에 “‘쓸모없어 베어버려야겠다’고 했더니 신기하게도 이듬해에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는 일화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2시 18분, 이번엔 석방렴 두개가 나란히 설치돼 있는 이른바 멀티 석방렴 앞을 지난다. 해안이 너무 커서 초대형 석방렴을 두개를 설치해 더 많은 고기를 잡았다.

호수처럼 조용한 바다에 노도가 보인다. 금수저 김만중은 그러나 서인 가문으로 조선 중기에 발생한 각종 환국(換局)기에 부침을 거듭했다. 특히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 난 아들의 세자 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의 당쟁에서 서인이 실각하자, 자신도 관직을 박탈(숙종 15년·1689)당한 뒤 노도에 위리안치 됐다. 정치활동 27년간 세번, 총 4년 6개월의 유배 생활을 했다. 1692년 56세에 세상을 떴다.

남해 사람들은 그를 놀고먹는 할아버지란 뜻으로 ‘노자묵자할배’라 불렀다. 국문소설 ‘사씨남정기’와 함께 어머니에 대한 위로 글인 ‘구운몽’은 당초 노도에서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발견된 서포연보(西浦年譜)에 선천 유배 때 지은 것이 확인됐다.

출발 4시간 30분 만에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에 닿았다. 윤문기 센터팀장은 취재팀에게 15코스에서→10코스까지 ‘6개 코스 완보’를 증명하는 캐릭터 배지 6개를 주었다.

김윤관기자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
유혈목이
멸치건조장
 
벼랑길
석방렴
칡넝쿨 터널
성남초교터
 
600년 된 화계마을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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