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사랑하기로 작정했는가, 미워하기로 작정했는가
[여성칼럼]사랑하기로 작정했는가, 미워하기로 작정했는가
  • 경남일보
  • 승인 2022.06.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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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 소장)
정윤정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결과엔 만족하는가? 할 말이 많은 사람도 있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사람도 있고, 선거 전이든 후든 관심 없는 사람도 있다. 결과에 만족하는 사람이든, 불만족인 사람이든, 무관심한 사람이건, 선거권이 없는 사람이건 대통령 선거에 이어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선거의 피로도가 높다. 후유증 또한 남아있다. 물론 우리는 이 시간을 또 잘 견뎌낼 것이다.

하나의 공약집을 두고 정책이 탄탄해서 좋다, 제대로 된 정책이 없다. 하나의 사업을 두고 꼭 필요한 사업이다, 돈 낭비다. 한 사람의 후보를 두고 준비된 후보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후보다. 한 후보의 생김새를 두고 눈이 날카로워 싫다, 눈빛이 살아있어 믿을만하다. 포근해서 좋다. 답답해서 싫다. 한없이 지지하고 한없이 거부한다. 왜? 내가 지지하는 당이니까. 내가 지지하는 후보니까. ‘사람보고 뽑나, 당 보고 뽑지’라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거결과에 만족하는 사람은 이후 정치가 신날 것이고, 당선된 정치인이 펼치는 정책을 지지하고 환호할 것이다. 선거결과에 불만족인 사람은 그 정치인의 행보에 분조하고, 펼치는 정책을 비난할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괴로운 것이 싫어 임기 동안 아예 정치에 등을 돌려버리기도 한다.

선거와 후보만 그럴까? 사람, 국가, 기관, 단체 등 ‘나’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관계에는 이런 행위가 나뉜다. 하나의 외형, 하나의 인격, 하나의 철학, 하나의 제도를 두고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사랑한다. 미워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미워한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로 작정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치아에 낀 고춧가루까지 사랑스럽다. 나에게 손해를 끼쳐도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한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다 옳다. 다 진실이 된다.

한 사람을 미워하기로 작정하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다 싫다. 모두 틀린 말이고 헛소리다. 산해진미를 먹어도 그 사람과 마주하면 맛이 없고, 그 사람과 관련된 물건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한 것이 없다. 그 사람이 숨만 쉬어도 미워죽을 지경이다. 이것이 무조건의 힘이다.

그런데 모든 선택이 사랑과 미움만 있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반드시 사랑하리라, 반드시 미워하리라 작정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무조건적일 수는 없다.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비판도 필요하고, 평가도 필요하고, 다른 판단도 필요하고, 내 선택의 변화도 필요하다. 충분히 필요하고 가능한 일이다.

정의 앞에 내 사랑이 밀리기도 하고, 공익 앞에 내 사랑이 밀리기도 하고, 정의 앞에 내 미움을 거두기도 하고, 공익 앞에 내 미움을 거두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관계, 건강한 공동체를 지속할 수 있다. 고정불변이 아니라 변화 속에 성장이 있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기로 작정했고, 무엇을 미워하기로 작정했는가? 나는 모 국가를 사랑하기로 했는가, 미워하기로 했는가? 나는 모 직종을 사랑하기로 했는가, 미워하기로 했는가? 나는 ‘민주’, ‘자본’, ‘보수’, ‘진보’, ‘여성’, ‘남성’, ‘젠더’, ‘복지’, ‘평등’, ‘인권’ 나는 무엇을 사랑하기로 작정했고, 무엇을 미워하기로 작정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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