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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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2.06.1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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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50년만의 축의금과 김정자 교수, 그리고 신작시집(1)
통영 출신 김정자(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시인의 신작시집 ‘맨발로 숲길을 걸어’(육일문화사)가 지난 5월 나와 눈길을 끈다. 그는 평론가이자, 시인, 소설가로서 이번에 8번째 시집을 선보였다. 김 교수는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이어 부산대학교 국문과 석박사를 수료했고 부산대학교 인문대 국어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한 교수문인이었다. 월간문학에 평론이, 창조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활동해 왔지만 그 과정은 과정일 뿐 그는 전 장르를 오가는 작가였다. 평론집에는 ‘한국근대소설의 문체론적 연구’, ‘한국근대작가연구’, ‘현대문학과 양가성’ 등 11권, 시집에는 ‘모짜르트를 듣지 못하는 날들’, ‘멀수록 내 얼굴은 가깝고’, ‘불꾹새 울면’ 등 8권, 장편소설에 ‘내 시간의 푸른 絃’, 에세이집에 ‘아다지오 논 몰토’ 등이 있다.

필자와 김 교수 사이에는 ‘50년 만의 축의금’이 놓여 있다. 이야기는 50여년 전으로 올라가 필자가 신춘문예(서울신문, 1965년)에 당선된 그해이거나 그 다음 해(?)에 있었던 김 교수의 결혼식에 참석한 한 토막 줄거리다. 그날 필자는 대학의 스승댁에 인사차 들렀었는데 스승은 두루마기를 입고 계셨다. “선생님 어디 가세요?”라 물었더니 “아, 자네도 알걸세. 오늘 시인의 결혼식에 주례로 가는데 따라 나서게. 그 시인은 부산의 J시인이야 알지?” “네”하고 주머니 생각도 못하고 그냥 따라붙었다.

식장은 서울대 교수회관에 풀코스 식사가 준비되어 예식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음식이 바로 나왔다. 스승은 주례사에서 “신랑은 훌륭한 시인으로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고, 규수는 서울사대 국어과를 나온 재원으로 앞으로 유망한 문인이 될 감이라 하는 바, 그 안팎이 나라 문단에 큰 별로 자리잡으리라 기대가 됩니다. 한 쌍은 나르는 모습부터 다르고 이르는 자리는 늘 우르러 보이리라 믿습니다. 축복이 영구하길 빕니다”하고 기원했다.

그 시간 필자로서는 처음 풀코스 양식을 접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음식에 축의금도 내지 않고 먹고 있다는 것이 미안하고 켕기는 것이었다. 당시 대학생 신분이라 버스 토큰이나 달랑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입장이라 축의금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식사가 대충 끝나갈 무렵 스승께서 필자를 부르셨다. 그쪽으로 가니 “인사들 하시게. 오늘 신랑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J시인, 신부는 앞으로 기대가 되는 고등학교 교사이자 미래의 시인일세. 이쪽 강군은 서울신문 신춘에 당선된 신예시인, 서로 알고들 지내시게” 소개를 하셨다.

그날 이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결혼 한 건이 있는 것 외는 다시 현장에 갈 일이 없었다. 그럭 저럭 필자 스스로 주례가 되어 경향 예식장을 오르내리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그 식장의 풀 코스와 축의금 결례, 신부의 한복 차림의 우아함, 또는 명미한 얼굴이 한 컷으로 오버랩되곤 했다. 세월은 여류하다고들 하지만 필자로서는 세월은 독하여 제 홀로 무심한 것이라 말한다.

50여년이 흐른 뒤 필자가 서울을 본격적으로 오르내리는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시절에 경상국립대학교 인문대 민속무용과 김미숙 교수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번에 학과에 출강해 주시는 교수님의 특강시간을 지역사회에 오픈하여 실시하고자 하는데 오셔서 축사 한 마디 해주셨으면 합니다.” 필자는 “그 특강 교수가 누구신가요?”하고 물었다. 그때 김 교수는 “부산대 국문과 명예교수 김정자 교수입니다”하고 대답했다. 그 순간 필자는 5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식장으로 달려갔다. 그날 저녁 필자가 할 일은 ‘50년 만의 축의금’ 봉투를 쓰고 평범한 수준의 액수를 투입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메시지 들어갈 만한 길이의 짧은 시 한 편 써서 다른 봉투에 접어 넣었다.

날이 밝았다. 오전 11시가 특강 시간이었다. 교실에는 학과 학생들과 진주문인협회 일부 문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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