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현충원에 민간인학살 피해자도 묻혀야 한다
[경일포럼]현충원에 민간인학살 피해자도 묻혀야 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6.20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지난 6월 6일, 제67회 현충일 추념식이 ‘대한민국을 지켜낸 당신의 희생을 기억합니다’는 주제로 국립현충원에서 열렸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행사이다. 내가 보훈가족이어서 전물군경유족회에서는 행사를 알리는 문자를 보내왔다. 전국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추어 1분간 묵념을 했다.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영령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마음으로 묵념한다. 그런데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령에 대해서는 하지 않는다. 한평생을 소리 없는 울음으로 멍든 가슴을 감싸 안고 살아온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족들을 위로하는 행사는 본인들이 주최하는 위령제만 있을 뿐 국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거의 없다. 심지어 유족들이 하는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는 단체장도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추모행사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화해시킴으로써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냥 있는 사이에 양측의 당사자들은 위로받지 못한 아픔을 안고 한평생 살았고, 이제 그다음 세대가 나서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

4년 전 2018년 제63회 현충일을 하루 앞둔 6월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가유공자, 보훈가족 초청 오찬’이 있었다. 250여 명의 초청자 중에는 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침몰 사건, 군 의문사 등과 관련된 유족들도 참석했다. ‘호국보훈’의 기존 개념이 확장된 느낌이어서 특별한 자리였다. 전남 여수시에서는 여순사건 72돌을 맞아 처음으로 민·관·군·경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추모제가 있었다. 2020년 10월 19일 오전 10시, 이순신광장에서 시민과 유족 100여 명이 모여 여수·순천 10·19사건 희생자 합동추모식을 가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참석자들이 줄긴 했지만 72년 만에 순직 경찰관 유족이 함께 참여해 온전한 합동추모제가 되었다. 전남 순천시도 이날 11시에 합동위령제를 올렸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경보음이 여수에선 10시, 순천에선 11시에 각각 1분씩 울렸다. 이렇게 유족들은 70년 넘게 이어진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다. 영모원 위령단 좌측에는 ‘취국절사 명현비’와 ‘호국열사 충의비’가, 우측에는 4·3희생자 위령비가 나란히 있다.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들과 한국전쟁 당시 전몰장병, 4·3희생자들을 한곳에 모셔 ‘역사의 갈등과 대립에서 화해와 용서로 나아가자’는 뜻으로 주민들의 정성을 모았다. 영모원의 4·3희생자 위령비 뒷면에는 ‘여기 와 고개 숙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이렇게 용기 있는 당사자들이 나서서 보여주는 진정한 화해는 보는 이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이제는 70여 년 전,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국가의 이름으로 위령과 추모를 해야 한다. 현충원의 시작은 국군묘지이다. 박정희 정권은 국군묘지를 국립묘지로 개명했고, 문민정부 들어 국립묘지의 이름은 다시 현충원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군인 위주였지만 지금은 국가의 입장에서 가치 있고, 기억해야 할 공적인 죽음으로 확대되었다. 이제라도 전사자의 유해뿐만 아니라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해도 국가가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해원과 상생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