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24)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24)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6.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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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가 있어 우리 겨레에게 유월은 슬픈 달입니다. 만주 연변에 살았던 조선족들이 6.25 때 격은 ‘항미원조전쟁’ 이야깁니다. 듕귁 엔벤작가 리태근 씨가 쓴 ‘어머니의 휘바람 소리’를 쬐끔 들어봅니다.

“어머님은 한평생 노래와 인연 있는 사람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남편을 잃고 고생을 밥처럼 씹어 삼키셨는데 언제 노래를 배울 시간이 있었을가. 간혹 배웠다 하더래도 언제 노래할 여유가 있었으랴. 그래서인가 일하다가도 휘여휘여하고 곡도 가사도 없는 알아 못 듣는 애매한 휘바람만 불었다.(…)나는 어머님이 일생에서 꿈에도 생각지 않던 금쪽같은 세 번째 아들이었다.(…)내가 어머님의 휘바람소리를 듣게 된 것은 어머니를 꼬부랑 할머니로 만든 앞남산 비석거리 무너져가던 토기굴 옆에 있던 손바닥만 한 오이밭에서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떼 같은 아들 둘이나 항미원조전쟁판에 보내고 무슨 재미로 살았을가. 날마다 찌그려져 가는 서글픈 밥상에 수저를 꼭꼭 두 개씩 갖춰놓고 정주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머니를 눈앞에 보는 것 같다. 앉으나 서나 멍청하게 앞남산을 바라보던 어머님이 얼굴에는 웃음이 끼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나를 밭머리에 앉혀놓고 기음매는 게 그렇게 좋아서 노래를 불렀을가.(…)어찌보면 어머님의 마음속에는 노래가 많았겠는데 불효자식들이 어머님의 가슴속에 피눈물만 가득 채워서 노래가 노래로 불리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래도 아니고 곡도 아닌 가느다란 휘바람소리로 변했을 것이다.(…)

내가 소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조선어문을 내놓고 학과마다 락제생이여서 그랬는지 철이 늦게 들어서 그랬는지 남들이 소학교만 붙으면 소선대에 무조건 입대하는데 나는 졸업할 박두에야 입대하게 되였다. 입대의식은 정해진 습관처럼 비석거리로 찾아갔다. 그때는 군대를 가도 비석거리요 입단해도 비석거리요 어른들이 입당해도 비석거리라 비석거리는 숭엄한 혁명의 붉은 장소였다.

진붉은 넥타이를 매고서 선렬들이 뜻을 이어서 공산주의를 건설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장엄하게 선서했다. 정작 붉은 기 앞에 섰노라니 웬일인지 공산주의가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님이 생각났다. 어머님은 퍼런 피줄이 뻗뻗하게 일어선 목에다 넥타이 대신 빨간 삼노끈을 매고 살아왔다. (아들을 무서운 전쟁판에 내보내던 날 어머님은 부처님을 찾아서 제발 새끼들이 명줄을 부탁했단다. 부처님은 아들과 어머님에게 똑같은 빨간 삼노끈을 내주며 세 사람을 한 명줄로 든든하게 묶어 놓았단다.) 어머님은 큰형님이 언녕 전방에서 사망된 것도 모르고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목에서 명줄을 풀지 못하였다. 나는 한달음에 오이밭으로 달려갔다. 어머님의 목에다 명줄대신 붉은 넥타이를 매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여느 때 같으면 너무 기뻐서 나를 와락 끌어 않아줄 어머님이 랭담한 기분이다. 말로는 장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진붉은 넥타이를 만지려 하지 않는 것이 별일이다.(…)

모르긴 해도 형님들도 진붉은 넥타이를 매자마자 앞남산을 넘어갔을 것이다.(…)나는 언 감자처럼 터덕터덕 갈라터진 어머니 손을 만지였다. 어머님은 말없이 남족하늘아래 어딘가를 이슬맺힌 눈길로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또다시 이빨빠진 량볼을 홀죽하게 모으고 휘바람을 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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