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나만의 멍 때리기
[경일춘추]나만의 멍 때리기
  • 경남일보
  • 승인 2022.06.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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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석 (대아고등학교 교감)
정규석

 

휴일에는 진주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선학산을 자주 오른다. 해발고도가 130m밖에 안 되는 데다 길이 완만해 숨이 별로 차지 않고 홀로 명상을 하며 오르기 좋은 산이다. 건강을 위한 이유도 있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정상에는 남강과 진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뿐만 아니라 휴게실과 화장실까지 설치돼 있고, 시가지와 접근성이 좋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원래 연세 드신 어르신들 위주로 많이 올랐으나 최근에는 가족 단위로 또는 연인끼리 오르는 경우도 늘었다.

나는 자주 혼자서 오른다. 오로지 나만의 멍 때리기를 위해서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창밖을 쳐다보며 멍하게 엉뚱한 생각에 잠겨있다가 선생님께 혼이 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멍 때리기를 즐기기 위해 습관적으로 산을 오른다. 특히 정상의 전망대 쪽 벤치에 홀로 앉아 한참 동안 시내 쪽을 멍하게 내려다보고 앉아 있으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마음속은 편안함이 자리하고 다음을 위한 재충전의 상태로 변화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멍 때리기는 흔히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한눈을 팔거나 넋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과거에는 멍하게 있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는 시각 때문에 다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2030세대에서 멍 때리기를 힐링콘텐츠로 활용하며 일상을 벗어난 여유로움과 가벼운 재미를 함께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색 콘텐츠로 아무런 생각 없이 모닥불을 바라보는 ‘불멍’에서부터 호수를 바라보며 즐기는 ‘물멍’, 심지어는 인센스 스틱에서 피어오르는 향불 연기를 바라보는 ‘향멍’까지 유행한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잠깐의 멍 때리기를 할 시간조차 갖기가 어렵다. 버스 안에서도, 식당에서도 가만히 있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 휴식이라는 이름 아래 게임을 주로 즐긴다. 끊임없이 뇌를 통해 무언가를 하기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잠깐만이라도 멍 때리기가 절실한 게 아닌가 싶다. 멍해 있는 것은 뇌에 휴식을 줄 뿐 아니라 자기의식을 다듬는 활동을 하는 기회가 되며 가끔은 평소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감이나 문제 해결 능력도 준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평소 자기가 맡은 분야에 열심히 일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하며 바쁜 삶을 사는 가운데 취하는 휴식이라야 달콤한 결실을 거둘 수 있다. 따라서 나름대로 성실하게 바쁜 일상을 산다고 느낀다면 한 번쯤은 멍 때리기를 통해 일상을 벗어난 여유로움과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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