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경일춘추]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 경남일보
  • 승인 2022.06.2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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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인 (문화해설사)
민영인 문화해설사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남의 지혜를 빌려다 나의 지식을 쌓는 행위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것이 나의 지혜로 바뀌지는 않는다. 지금 붙들고 있는 책은 한형조 교수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문학동네, 2020)이다. 이 책의 제목이 한글로 ‘농담’이라 적혀 있다고 부처님의 실없는 소리쯤으로 여기면 큰코다칠 수 있다. 나는 저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 농담을 한자 ‘濃談’으로 새겨 부처님의 깊이 있는 말씀으로 해석했다. 더구나 불자가 아닌 나로서는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아 저만치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읽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 중에서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자기 관심에 의해서 왜곡하고 굴절시킨다. 그래서 자신이 믿는 것이 객관적이고 진실이라 믿으며 살고 있다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장자에 나오는 ‘부경수단 속지즉우(鳧脛雖短 續之則憂), 학경수장 단지즉비(鶴脛雖長 斷之則悲)’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면 슬프게 된다.) 여기서 짧고 길다고 판단한 것은 누가 한 것인가. 보는 사람이 했으며, 오리나 학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데, 사람이 붙여줄까, 잘라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각을 주관화하기보다는 때로는 객관화, 타자화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인칭 주어를 교활하게 활용하여 삼인칭 화법으로 표현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국민이 원해서…”라는 영혼 없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본다. 자신과 지극히 소수인 주변인의 의견을 마치 대다수 국민의 요구인 것처럼 호도하는 경우다. 그러나 반드시 주관화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주관이 뚜렷하지 못하면 줏대 없는 사람이 되기 쉽고, 반대로 주관이 강하면 아집으로 흐를 수도 있다. 아마 이 중용의 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행하기가 어려우니 동양사상의 유불선 모두 수 천 년 동안 이 ‘깨우침’을 붙들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타자화 시키려면 자기애가 선행되어야 한다. 맹자가 말하길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스스로를 욕되게 한 후에 남들이 그를 모욕하고, 가문도 반드시 자신이 훼손한 뒤에 남들이 망가뜨리고, 나라도 스스로 무너뜨리고 나면 뒤에 남들이 정벌한다”고 했다. 현재 나라와 국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인데도 오직 자기들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당 정치에 딱 들어맞는 문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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