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집단 무기력 바이러스의 극복 방안
[경일칼럼]집단 무기력 바이러스의 극복 방안
  • 경남일보
  • 승인 2022.06.2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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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준 (진주 당당한의원 대표원장)
어인준 원장


무기력은 전염된다. 개인으로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강력한 영향력의 상대를 마주할 때, 무기력은 증폭될 수 있다. 패권국인 미국의 청소년들은 ‘총기 난사 세대’라고 불리며, 초등학교의 95%가 총격범 대응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총기규제에 대한 의식 변화는 미미하고 미국 내 총기구입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의 일부 교사는 학생들의 졸업앨범에 본인의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일부 학생과 학부모가 사진을 도용하거나, 온라인상에서 앨범 사진을 돌려보며 외모 평가나 집단 모욕을 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 사안에 대해 범적 규제가 강화되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기술 발전에 따라 특정 일탈 행위의 사회적 파급력은 계속 증가하므로, 또 다른 형태의 피해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점을 인지하고 있는 대중의 관점에서 스스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우범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접촉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0년 설문 조사에 따르면 봉변이 두려워 청소년의 길거리 흡연을 제지 못 하겠다는 한국 성인이 56%에 달했다. 반면 봉변을 당하더라도 제지하겠다는 의견은 29%였다. 하나의 개인으로서 대응할 수 없는 강력한 벽에 반복적으로 부딪히게 되면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다. 사회에 대한 학습된 무기력은 3가지로 연결된다. 첫 번째는 무관심이다. 관심을 두고 무기력함에 스트레스를 받느니 관심 자체를 두지 않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내가 못한 일을 해결해줄 능력자(정치인 등)가 출현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해결을 위한 집단을 구성하고 집단의 보호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 가지 방안 모두 인간성에 대한 믿음 없이는 파시즘으로 연결될 수 있다. 무관심은 독재를 불러오고 영웅에 대한 맹신은 합리적 비판을 잠재운다. 구성원 간 분리와 격리를 전제로 한 집단권력은 인간 소외를 가중시킨다. 돈과 일자리, 의료 지원 등 사회 안전망으로 불리는 복지정책이 충분하다고 해서 위의 사례가 온전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이웃과 청소년들에게 낙오자의 시선을 거두고, 반사회적인 사고방식과 행위에 대해 건전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은 상담전문가들만의 몫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난을 극복해내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구성원 모두의 범사회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집단의 권력으로 억누르기보다는 주체적인 개인과 개인으로서 지속적인 관심과 피드백이 있을 때 비로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총기 난사범, 교사를 모욕하는 사람, 계도하는 성인에게 봉변을 줄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일탈과 불행에 대한 무관심이 더 큰 범죄를 부른다. 타인에 대해 공감하지 못해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유명한 사이코패스 환자라도 적절한 사회화와 이웃의 지속적인 관심이 있는 사회에서라면 평생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정상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집단권력과 규제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하고자 하고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인류 보편적인 개인으로서의 의지여야 한다. 무관심을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공권력의 개입일 수밖에 없다. 맹목적으로 공권력에 대해 의존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행사되어야 할 필요악인, 정당화된 또 하나의 폭력을 통해 새로운 폭력을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동안 인류가 이룩한 문명 발전의 가장 큰 배경은 휴머니즘에 입각한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꽃 필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기력은 전염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열정도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불신과 규제만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우리 주위의 이웃을 돕기 위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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