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대 (수필가)
디지털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키오스크(kiosk)와의 알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산초 판사(Sancho Panza)를 배종(陪從)삼아 거인 같은 풍차와 대결하는 돈키호테가 무색하지 않은 알지 못하는 세상이 갑자기 찾아왔다. 일상의 삶이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터치식 화면과의 싸움터가 된 것이다. 기차역·고속버스 터미널에는 무인단말장치 키오스크가 버티고 서있다. 카드를 읽히고 목적지를 차질 없이 눌러야 승차표가 나온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진땀깨나 흘려야 한다. 사람들이 디지털기기 스마트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코로나와 함께 비대면 세상이 왔다. 컴퓨터가 일상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필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몇 년이란 시간을 건너뛰어 바뀐 것이다.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붐비는 몰이나 백화점 먹거리 집단시설에는 어김없이 화면 터치식 판매장치가 버티고 서있다. 동네 구멍가게나 짜장면 집까지 화면과 소통해야만 무언가를 사먹을 수 있다. 무인 카메라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적응과 비적응의 자료를 축적한다. 바야흐로 홀로 버텨내는 능력이 곧 삶의 질이 되는 세상이다. 많은 것이 사라졌다. 부조금 봉투가 사라지고 은행 통장도 없어진다. OTP비밀번호니 보안카드니 하는 디지털 출입구가 알지 못하는 가상계좌로 데리고 간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연가미연가 의심하며 은행 앱이 하라는 대로 눌러가다 보면 ‘이체가 성공적으로 완료 되었습니다’하는 문자가 뜬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세대가 겪어야하는 차별의 시대가 되었다.
외국에서 들어온 패스트푸드 점 앞에서 등 뒤 젊은이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무언가를 사는 노인들, 대형 마트에서 산 물건을 자동 계산대에 올려놓고 바코드를 읽혀야할지 아니면 QR코드를 갖다대야할지 몰라 진땀을 흘린다. 누군가에는 쉽고 빠른 것이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이자 재앙이다. 디지털 이기(利器)는 축복이면서도 뛰어넘을 수 없는 차별이자 고립으로 이끄는 장벽이 되고 있다. 자식을 낳고 기르며 오로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세대, 가난을 뿌리치기 위해 앞만 보고 살아 온 우리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디지털 괴물이 가로막고 선 것이다. 원하는 물건을 말이나 손짓으로 주문하고 바쁜 사람이 새치기도 하던 시절이 새삼 그립다. 보면서 대화하고 얼굴로 읽는 세상은 정녕 사라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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