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26)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26)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7.0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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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납니다. 교장 선생님으로 퇴임하신 분인데 자기를 찾아와 시를 써보고 싶어서 그러니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그랬다고 합니다. ‘수필 그거는 말이야 그냥 쓰면 되는데 시는 안돼?’ 그 말을 전하면서 그 시인이 웃었습니다. 물론 그 시인은 ‘쓰면 되는’ 그런 수필은 없다는 걸 알고 있지요. “와! 명언이다. 우찌 그런 말을!” 나는 감탄이나 했습니다.

나는 간혹 이 일화를 생각합니다. 그 선생님은 진짜 수필 작품을 써봤을까? 정말로 수필을 알까? 나는 혼자 짐작합니다. 알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니까요.

모르는 것보다 안다는 것은 훨씬 무겁습니다. 안다는 것, 그거 정말 무겁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천지를 모르면 깨춤을 춘다’잖아요. 깨춤을 추려면 한없이 가벼워야 하거든요. 그래서 자주 물어봅니다. 나는 수필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럴 때마다 막막함을 느낍니다. 안다는 것 그거 정말 막막합니다. 그래서 혼자 대답해봅니다. 알기는 뭘 알아? 그저 안다고 느끼고 있을 뿐이지. 착각은 자유니까.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알아야 모르는 걸 알지요.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모름을 알겠습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라’고 하는 행위야말로 호랑말코가 웃을 일이지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아는 건 안다고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리하기가 쉽지 않은 게 인간인가 봅니다. 오죽하면 성철 스님께서 한 말씀 했겠습니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진주문협은 ‘글예술 사랑방’을 열어 회원들에게 글을 발표하게 하고 서로 평을 주고받으며 친목을 도모합니다.장르마다 한 분씩 발표하게 하는데, 자기 장르가 아니더라도 그 글의 수준을 짐작하는 데는 어렵지 않습니다. 문학성은 공통분모니까요. 그런데 묘한 기분을 느끼는 분위기가 연출될 때가 있습니다. 누가 발표하는 그 작품이 좋다 싶으면 같은 장르에 속한 사람들이 기분이 좋은 겁니다.

어느 날 글예술 사랑방에 나온 수필작품이 영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러면 토론할 게 없지요. 마치고 밖에 나왔는데, 길가에 에나가 하종갑 선생이 서 있다가 나를 보고는 “배 선생, 이 차 타요! 우리끼리 가서 이야기 좀 합시다”하는 겁니다. 흑맥주 집이었는데, 제법 여럿이 있었습니다. 술 한 모금 마시고는 에나가 선생이 회장님이신 박동선 선생에게 “형님, 시는 시인이 쓰고 소설은 소설가가 쓰고 평론은 평론가가 쓰는데, 수필은 와 아무나 씁니까?” 마치 대들듯이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박동선 선생이 서슴없이 “수필은 문학이 아니니까” 하는 겁니다. “와 문학이 아닙니까?”

박동선 선생이 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겁니다. “문학이 될라면 뭘 좀 비틀어야 하는데, 그러면 수필이 안 되거든.” 나는 대화를 들으면서 두 분을 번갈아 바라보느라 바빴습니다. “그럼, 형님이 쓰는 수필은 문학이 아닙니까?” “응, 내 수필은 문학이 아니야!”

박동선 선생은 인품으로나 인격으로나 정말 훌륭한 선빕니다. 나는 그 분 앞에서는 늘 작아지는 나를 느끼면서도 선생의 수필은 말꽃(문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는데, ‘아! 아시고 계셨다니!’ 얼마나 훌륭한 인격인가.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쓰는 글은 문학이 아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작가여, 그대는 훌륭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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