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예쁘면 시체도 괜찮다는 생각
[여성칼럼] 예쁘면 시체도 괜찮다는 생각
  • 경남일보
  • 승인 2022.07.0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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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사단법인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정윤정


“선생님, 시체를 보고 반하겠습니까?”, “선생님은 시체에 반해서 키스하시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아니요!”, “절대 그럴 수 없죠”라며 고개를 흔든다. “그럼 시체에 반해서 키스하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다시 물으면 “심신상실 상태 사람에게 강제추행 한 것이 되겠죠. 하하하”라고 웃는다.

동화책 ‘백설 공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우리는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읽어주는 어른도 듣는 아이도 이야기가 끝나면 서로 사랑스런 눈길을 마주했을 뿐 의아해 하지 않았다.

동화책에 나오는 왕은 늘 왕비가 죽고, 어린 공주 때문에 새로운 왕비를 맞이한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왕비를 맞이하는 기준은 외모다. 그 또한 ‘세상에서 제일 예쁜’이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왕비를 맞이한 왕은 공주의 양육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공주가 죽음에 몰리도록 모른다.

왕비는 공주를 죽이려고 한다. 공주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보다 예쁜’ 이유다. 공주가 점점 자라면서 ‘나보다 예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엄마가 딸을 죽이는 이유가 오직 ‘세상에 나보다 예쁜 사람은 없어야 한다’이다. 백설 공주에게는 독사과를 먹이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는 마법을 걸어 죽이려 한다.

두 공주는 시체가 되어 누워있다. 어김없이 이웃 나라 왕자가 지나간다. 그리고 죽어 누워있는 공주의 외모에 한눈에 반한다. 왕비가 불안해 할 만 했나 보다. 지나가던 왕자가 시체를 보고 한 눈에 반한걸 보면.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왕자는 공주 시체에 키스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죽은 공주가 살아난다. 독사과를 먹은 공주에게 해독제를 먹이거나, 마법에 걸린 공주에게 마법을 풀어준 것도 아닌데, 지나가던 왕자의 키스에 죽은 공주는 살아난다. 예쁜 공주에 대한 왕자의 능력을 보여준다.

동화가 세상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여자는 예쁘기만 하면 돼, 오빠가 책임 질테니 오빠만 믿어’,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남자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예쁜 여자는 능력을 갖춘 남자에게 의존하면 된다. 참 씁쓸하면서도 재밌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심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고 전국의 학교, 집, 도서관, 서점의 인기 동화였다는 것이.

자라면서 당연하듯 스며든 성 고정관념은 우리 생각과 생활을 지배한다. 남자의 능력은 무한해야 한다. 남자 친구는 차가 있어야 하고, 남편은 집을 마련하고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

남자 친구가 차가 없는 것도 무능, 남자 친구가 좋은 선물을 사주지 못하는 것도 무능, 좋은 이벤트를 기획하지 못하는 것도 무능이다. 좋은 집으로 이사 가지 못하는 것도, 우리 가족이 해외여행을 못가는것도, 좋은 직업이 없는 것도 모두 남편이나 아빠의 무능이다. ‘나만 믿어, 내가 책임 질께!’란 말이 과연 누구를 구속하고 있는가?

남자에게 나를 책임질 의무를 부여한 여자는 어떠한가? 나를 책임지는 사람이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그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나를 책임져주고 싶을 만큼 내 외모는 빛나야 하고, 그의 옆에 섰을 때 그가 뿌듯하도록 늘 신경써야 한다. 나를 책임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의 감정을 살펴야 하고, 능력자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돌봐야 한다. ‘여자는 예쁘기만 하면 돼!’는 과연 누구를 구속하고 있는가?

예쁘면 시체에도 키스할 수 있다는 생각, 죽은 사람도 살리는데 나 하나 책임못지겠냐는 생각.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롭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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