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기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윤석열 대통령이 6월 7일 국무회의에서 “반도체는 국가안보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다.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다”라고 말한 이후 우리나라 고등교육계에 ‘반도체’가 화두가 되었다.
대학에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문제를 놓고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 간의 의견 대립이 첨예하다.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리는 것은 수도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수십년 동안 지속해 온 국가적 정책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교육부 출입기자단이 6월 23~24일 대구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 총장 세미나에 참석한 총장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수도권 대학 총장 28명 중 24명(85.7%)은 규제 완화에 찬성한 반면, 비수도권 대학 총장 56명 중 52명(92.9%)은 반대했다.
인력 공급의 시기도 문제다. 반도체 학과의 정원을 증원하더라도 학부 졸업생의 경우 최소 6년 이후에 배출된다. 또 다른 문제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우리나라 미래전략산업 모든 부문에서 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교육시스템 개편과 관련하여 나이의 경계, 지역의 경계, 국가의 경계, 학문간의 경계를 허물자고 주장해 왔다.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증원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학문간의 경계이다. 반도체는 종합학문으로서 전기, 전자, 물리, 재료, 화학, 소재 등 다양한 학문 분야와 연관되어 있다. 실제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등 국내 굴지의 반도체 관련 기업의 사원들은 이런 학과 출신들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따라서 반도체 학과만의 정원을 늘리고 집중 투자할 것이 아니라 관련 학문 분야의 정원을 긴 안목을 보고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있을까.
첫째 국가거점국립대학의 활용이다. 6월 24일 열린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에서 “매년 부족이 예상되는 반도체 관련 인력은 수도권을 제외한 9개 광역지자체에서 거점대학을 포함한 10여개 지역 대학을 선정하여, 대학별로 평균 100여 명씩 연간 1000명 학부생을 양성하자”라고 제안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둘째, 연계전공, 융합전공, 마이크로디그리 또는 나노디그리(일종의 학점당 학위제) 등 다양하고 유연한 학사구조의 개편이 우선되어야 한다. 셋째, 개방형 공유대학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전국 광역지자체별로 설치돼 있는 국가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개방형 공유대학 체제를 갖추어 반도체 등 신기술 분야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인력 양성과 지방대학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이다. 학기 중에는 전국의 우수한 교수들로부터 대면/비대면으로 강의와 기초실험을 수강하고 방학 기간에는 실험·실습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 대학에서 실험·실습을 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반도체 인력 양성의 문제는 어느 한 지역이나 대학의 문제가 아니다. 경상국립대도 경남의 미래성장동력 산업과 연계하여 연간 200명 정도의 반도체 인력을 양성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국가의 안보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인 만큼 현황 분석과 미래 전망을 담은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