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28)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28)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7.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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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참 오래전 이야깁니다. 강희근 선생께서 나한테 책을 한 권 주었습니다. 선생께서 쓰신 ‘시 짓는 법’이었어요. ‘시는 꿈이다.’ 안 표지에 친필로 적혀 있었습니다. ‘시는 꿈이다.’ 정말 멋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백과사전이나 문학 사전 같은 데에 나열되어있는, 시는 이런 거라는 설명은, 그건 시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쓰는 말입니다.

유홍준 시인이 김소월 문학상을 받았을 땐가 권영민 교수가 물어요. 시가 뭐이냐? 유홍준 시인 대답이 걸작이에요. ‘시는 밥이다.’ 왜 시가 밥이냐고 되물었는데, ‘내가 시로 밥 먹고 사니까, 시가 밥 아니냐’고 합니다. 우습지요? 시가 밥이라니? 그런데, 이 밥이 입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눈으로 귀로 가슴으로 먹는 밥이라면, 그게 시인에게는 시요, 에세이스트에게는 에세이이지요. 스님에게는 금강경일 것이요, 신부님에게는 성경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밥을 먹으며 아름다워집니다. 꿈과 밥. 이보다 위대한 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한 자’ 그대는 행복하다.

이 나라에는 시인이 제일 많고 다음으로 수필가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중에 시를 아는 시인이 몇이며 진정 수필을 아는 수필가가 몇이나 있을까요? 세상엔 짜가도 많거든요. ‘나는 알고 있다.’ 나도 모르게 하는 이런 착각은 즐겁습니다. 수필을 모르는 사람이 수필을 쓰는 즐거움은 목거지에서 샴페인 터뜨리는 기분이거든요.

시도 수필도 그가 무엇인지는 진짜 그를 만나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 할지라도, 일가견(一家見)을 가진 사람만이 지의의 자격이 있습니다. 이런 분이 지은 글을 읽을 때 ‘꿈’인지 ‘밥’인지 글에 숨은 지은이의 견성(見性)을 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꽃에서는 그 견성이 은유로 피기 때문입니다.

조지훈 선생은 ‘관조’하라 했습니다. 물에 어리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다시 새로운 그림인 언어가 떠오릅니다. 시를 오래오래 관조하고 있으면 시가 보이고, 에세이·수필을 오래오래 관조하고 있으면 그가 그리스도처럼 몸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아, 그때 그 기쁨을 누가 알리오!

장르 개념은 학문에 있지만, 수필이라는 글은 글꽃이지 학문이 아니죠. 저마다 꽃마다 꽃이 다 다르듯이 꽃에는 개성이 있습니다. 에세이·수필이라는 글꽃도 그러합니다. 개성이 없다면 그는 이미 꽃이 아닙니다. 꽃이 되기 위해서는 그를 알아야겠지요.

우리사람(함석헌 선생이 일본에서 온 한자 말 ‘국민’을 버려 이 말을 쓰셨다.)에게 피천득 보다 사랑받은 수필가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개성이지요. 이분만큼 ‘수필’을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이 ‘수필’이 피천득 선생이 만나본 ‘수필’입니다. 이렇게 수필을 만나본 사람이 수필가 중에 몇이겠습니까? 만나보고야 그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진정 만나본 사람만이,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를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세종 임금님께서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무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진정 너희들이 운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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