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나의육아이야기]수기부문 대상 문회성
[2022나의육아이야기]수기부문 대상 문회성
  • 경남일보
  • 승인 2022.07.2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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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육아이야기 수기부문 대상] 문회성
오빠야를 사랑해서 시작된 삼형제 이야기


대학교 동아리방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전라도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어느 날 예비역이라며 한 남자가 동아리방에 들어왔다. 나는 진주, 그는 창원 출신으로 우리는 “창원도로가 쭉쭉 뻗었지요. 쭉쭉” 앞으로 나란히 하는 손 사이로 우리 사랑의 전류가 흘렀을까? 우리는 이내 곧 커플이 되었다. 동아리 사람들한테 비밀 연애로 시작한 우리의 사랑은 각자 창원에 취직을 하고 진주에 취직을 하는 사이에도 이어졌다. 5년이 지난 우리는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기로 하였다.

그렇게 “오빠야”로 시작된 우리 인연은 “아빠”라는 호칭으로 변하면서 첫째 아들을 낳았다. 사랑스러운 첫째 아들은 시댁의 사랑을 가득 받으며 자랐고 그 사이에 우리는 둘째를 임신했다. 입덧도 조금은 다른 거 같고 먹고 싶은 것도 다른 걸 보니 분명 딸일 것이다. 생각했는데 이런 우리의 완벽한 4명 가족 구성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째도 아들이었다.

‘그래! 괜찮다. 시간 텀을 두고 딸을 도전해보자. 그럼 하늘에서 우리게 딸을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가족계획을 미루고 있었는데 왜 하필 새벽에 불타올랐는지…. 둘째가 돌이 되기 전 생리를 안 한다. 불안한 마음을 가득안고 임신테스트기를 샀는데 희미하게 두 줄이다. 난 지금까지 희미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닐 것이다. 어서 산부인과에 가보자. 했는데 난 굴욕의자에서 다리를 벌린 채 울고 말았다.

“엄마 몸은 너무 정직하네요. 아기집이 선명하게 보여요.” 둘째를 받아주신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너무나도 해맑게 말씀 해 주셨다. “에구~선생님. 안돼요. 둘째 돌도 안됐는데요. 안돼요.”

울면서 나와서 신랑한테 욕을 하면서 통화를 했다. 아들 둘 낳을 때까지는 매달 산부인과도 같이 갔는데 사람들이 셋째를 임신한 줄 알고부터는 하도 물어서 산부인과도 혼자 다녔다. 그러다 14주가 지날 때쯤 직장에서 외출을 한 신랑이랑 산부인과에 같이 갔는데 “오늘 너무 잘 보이네요. 여기가 고환입니다. 아들이네요.” 또 의사선생님께서 해맑게 말씀 하신다.

으앙~ 난 울고 신랑은 식당에서 소주 한 병을 마셨다. 난 이제부터 삼형제의 엄마인 것이다. 하늘은 내 인생을 너무 특별히 만들어 주고 싶었나 보다.

난 삼형제의 엄마다. 아기를 낳으러 가니 간호사선생님께서 “엄마는 돈 많이 벌어야 겠네요. 아들 셋 장가 보낼려면….” 아들 셋 데리고 병원에 가면 “엄마 고생이 너무 많겠다. 너그들 커서 효도해야한다.” 지나가는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께서 “엄마는 죽을 때까지 서운하겠다. 며느리는 시어머니 죽을 때 안 울어준다.”

‘네네, 다 알겠습니다. 당신들이 삼형제 키워줄 것 아니면 좀 조용히 계셔주세요. 저도 미치겠거든요.’ 항상 이런 말들을 가슴 속에 되뇌이고 살았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 속에서 삼형제를 쑥쑥 키워서 지금 난 중1, 초5, 초3 아들들을 둔 엄마가 되어 있다. 뛰어 놀다가 무릎이 찢어져서 응급실에 가고, 둘째가 던진 돌에 첫째 머리가 찢어져 응급실에 가고, 엄마 부르러 씽크대 옆에 왔다가 냄비에 엄지발가락이 찢어져서 응급실에 간 사건 말고는 그렇게 큰 사고는 없었다. 층간 소음으로 힘들어 하던 아랫집 분들이 몇 번 뛰어 올라와서 급하게 상가 뒤 1층을 구해 이사 가고 거기서 너무 시끄럽다고 2층 분들이 힘들어 하신 일 말고는 많이 힘든 일은 없었다. 한 명은 엎고 한 명은 유모차에 태우고 한 명은 손잡고 병원을 사흘에 한 번씩 갔던 거 빼고는 힘든 일 없었다. 늘 삼형제가 자기 의견을 앞세우면 난 솔로몬이 되어 현명하게 결론을 내는 일 빼고는 머리 쓰는 일 없었다. 이런 저런 일들을 뒤로하고 지금 저렇게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들들한테 고마울 뿐이다.

내 인생은 누구보다 특별하다. 그리고 이 인생은 그대라는 남편과 함께여서 더 잘해낼 수 있었다. “사랑해”라고 살가운 말을 해 주지는 않지만 나의 고생을 다 알아주고 가끔 서프라이즈 선물과 꽃을 건네는 그대가 내 남편이라 좋은 하루하루고 “내가 딸 역할 하잖아. 엄마 말도 잘 들어주고~” 해주는, 아직까지는 눈웃음 쳐주는 첫째아들, “그 사람들은 삼형제랑 살아보지도 않았잖아” 하고 진짜로 진심으로 화 내주는 둘째아들, “난 엄마 없으면 안 돼. 정말 사랑해”라고 매일같이 안아주고 말해주는 셋째아들이 있어서 또 좋은 하루하루다.

분명 중간 중간에 화가 너무 치밀어 오르고 이 세상에 대한 한탄의 말도 많이 했으며 내 인생 전체를 부정한 적도 많다.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는 나에게 좋은 일만 남아있고 좋은 날들만 남아있다. 창원에서 온 한 오빠야를 너무 사랑해서 결혼을 했고 또 너무 사랑해서 낳은 우리 삼형제~ 난 우리 가족을 너무 사랑한다. 앞으로도 우리 인생은 계속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그 빛깔 색깔이 잠깐 잠깐 회색빛이 될지라도 오색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내 인생을 응원한다. 그대도 응원한다. 삼형제도 응원한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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