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기자의 시각]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 배창일
  • 승인 2022.07.2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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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일 기자


국내 조선업은 외화벌이를 톡톡히 해 온 효자 업종이었다. 조선산업이 지역경제의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거제시 역시 조선업에 기대 풍요로움을 만끽했었다.

조선업 호황이 정점을 찍던 2010년 거제시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4200만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거제에 가면 길 가던 개도 1만원 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호황일 때는 모두가 좋았다.

조선업 하도급 구조의 끝단에 있는 일용직 물량팀은 전국을 돌며 돈을 벌었다. 일거리가 넘쳐날 때 물량팀 주머니는 원청업체나 협력업체 직원들보다 훨씬 두둑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 불황이 닥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거제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곧바로 인력감축에 나섰다. 불황의 여파를 온 몸으로 체감하며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은 2차 노동시장이다. 하청은 복지부터 시작해 임금 감소, 근로조건 악화 등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조선업처럼 업황 사이클 변동이 큰 분야는 노동 유연성이 ‘필요악’이라는 말을 한다. 사실상 조립기술이 전부인 국내 조선업의 경우 원·하청과 물량팀의 전부 직접 고용을 위해서는 원청 정규직 근로자와 노조가 근로조건을 대폭 하락하는 데 동의하면 된다. 하지만 원청노조가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국내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 조선업계에서 하도급법 위반 행위가 일상화된 계기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국내 조선사가 해양플랜트산업에 경쟁적으로 진출한 것을 꼽는다. 당시 설계능력 부족으로 예상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 조선사들이 하도급업체에 낮은 대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손실을 줄인 것이다.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야당은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이 장기화하자 옥포조선소 현장으로 달려왔다. 5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큰 소리를 쳤다. 정부와 여당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단호한 처벌을 예고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은 국내 조선업의 고질적 병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더 이상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정부가 국내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진정한 개혁을 시도해야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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