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 나들이[79]
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 나들이[79]
  • 경남일보
  • 승인 2022.08.0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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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아랑곳한 토박이말(2)
한바람(태풍)이 온다고 해서 걱정을 했었는데 다른 쪽으로 가서 우리나라에는 비도 그렇게 많이 안 오고 바람도 세게 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비는 가뭄이 가실 만큼 내렸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왔고 자주 옵니다. 지난 글에서 비가 오는 만큼, 정도에 따라 붙은 여러 가지 비 이름들을 알려드렸습니다. 오늘은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비가 오는 모습이나 세기에 따른 이름들을 몇 가지 더 알려드리겠습니다.

‘비’라는 이름을 가진 것 가운데 가장 가늘게 내리는 비는 ‘이슬비’입니다. 빗방울이 눈에 띄어서 비가 온다고 하기는 어려울 만큼 비가 오는 것 같지는 않은데 풀이나 나뭇잎에 이슬처럼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는 비를 이슬비라고 합니다. 이슬처럼 오는 비라는 뜻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슬비보다 좀 더 세게 오는 비는 ‘가랑비’입니다. 비가 오는 줄 알 만큼 눈에 보이지만 빗방울이 아니라 가루처럼 부서진 것이 흩어져 내리는 비를 가리키는 말이랍니다. 이 ‘가랑’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두고 여러 가지 풀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안개’를 뜻하는 ‘가라’에서 온 것이고 처음에는 ‘안개처럼 내리는 비’를 가리키던 말이 뜻이 바뀌게 된 거라는 풀이가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합니다. ‘안개처럼 내리는 비’를 가리키는 말로 ‘안개비’라는 말을 따로 쓰기도 합니다.

또 실처럼 가늘게 길게 금을 긋듯이 내리는 ‘실비’가 있고 바람이 없는 날 가늘고 조용하게 내리는 ‘보슬비’가 있습니다. 보슬비보다 굵게 부슬부슬 내리면 ‘부슬비’입니다. ‘부슬비’보다 더 굵어져 빗방울 소리가 들리면 여느 ‘비’가 됩니다. 이 비가 거세지면 소리가 달라집니다. 빗줄기가 굵고 줄기찬 비를 ‘작달비’ 또는 ‘장대비’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작대기’, ‘장대’를 떠올려 보시면 어떤 비인지 느낌이 오실 것입니다. 물을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를 ‘억수’라고 하고 ‘끊임없이 쫙쫙 내리는 비’는 ‘줄비’라고 해요. 땅을 다질 때 쓰는 연장인 ‘달구’로 짓누르듯이 거세게 내리는 비는 ‘달구비’, 채찍을 내리치듯이 굵고 세차게 내리는 비는 ‘채찍비’, 빗발이 문 앞을 가리는 ‘발’처럼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비는 ‘발비’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집(사전)에 올라 있는 비가 있는가 하면 주룩주룩 장대처럼 굵게 내리는 ‘주룩비’, 물동이로 붓듯이 쏟아지는 비인 ‘동이비’는 말집(사전)에 올라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쓰셨는데 말이지요. 끝으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비 이름 하나랑 낯선 비 이름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바로 ‘소나기’입니다. ‘소낙비’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개부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장마로 큰물이 난 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퍼붓는 비가 큰물이 져서 냇가 자갈밭을 흙먼지로 뒤덮어 놓은 ‘명개’를 깨끗이 부셔 없애 주는 비를 말한답니다.

우리말에 이렇게 많은 비 이름이 있다는 것도 새롭고 놀라우시겠지만 또 이렇게 비 이름을 짜임새 있게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우신 분들이 계시지 싶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만들어 써 오신 여러 가지 비 이름들을 잘 배우고 익혀 우리 다음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잘 이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앞날에 어떤 것들이 새로 나오고 또 어떤 앞날을 살아갈 것인지 어림하기도 어려운 다음 사람들이 잊지 않고 이어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깊이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토박이말바라기 늘맡음빛(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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