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교육부장관님,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경일시론] 교육부장관님,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 경남일보
  • 승인 2022.08.0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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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서유석 교수


필자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는 대학원생의 수가 많아서 나온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원생들 사이에 신라의 골품제처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신분 혹은 계층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소위 ‘본교 출신 남학생’은 성골(聖骨)이다. 가장 높은 위치다. 본교의 사정을 가장 잘 알면서, 일꾼이 될 수도 있고, 그보다 우선 남자이기 때문이다. 아니 할 말로 소위 ‘교수’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아서 그리 불렀나 보다. 그다음은 ‘타교 출신 남학생’이다. 이들은 진골(眞骨)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부장 남자니까 뭐라도 좀 더 책임감 있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이 불합리한 남성 선호 경향은 성골과 진골 모두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실상 대학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업무들을 이들이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신라에서도 성골과 진골까지는 왕이 될 수 있었지만 그 아래는 차별이 심했다. 6두품은 ‘본교 출신 여학생’이다. 본교 출신 여학생이 6두품이 된 것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학내 안팎 사정에 밝아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가 매우 적게 돌아간다. 지금이야 좀 덜해졌지만, 아직도 실제로 신규 임용되는 교수의 성비를 따져보면 여성 차별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마지막은? ‘타교 출신 여학생’이다. 골품제의 실질적 맨 아래 5두품 혹은 4두품이다. 이들은 정말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에 진학한 경우가 꽤 있지만, 외적 조건으로 인해 수많은 편견에 시달렸고 기회가 가장 적게 주어졌다.

이렇게 공부하던 친구들이 학위에 도전한다. 역시 품계대로 학위를 받아 가는 경우가 많다. 성골이나 진골은 본인이 노력만 하면 학위 과정을 수료하고 학위증을 받는다. 6두품까지도 그렇다. 그래도 그들의 학위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본교에 있으니, 자기 학문에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언제나 문제는 그 아래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존재들이니 이들은 매순간 어디서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다른 학교 출신이 우리 학교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편견, 거기다 더해진 여성이라는 편견까지 극복해야 하기에 이들이 자기 학문과 연구에 자신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결국 박사학위를 받는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품계(?)가 이들이다.

그렇게 대학원을 졸업해서 박사학위를 가져본들, 국내 인문사회계 박사학위는 쓸 데가 별로 없다. 현실 생활과 유리된 것처럼 보이는 인문학 학위는 더더욱 그렇다. 평론가 고 김현 선생의 말처럼 인문학이란 ‘무쓸모의 쓸모’일 뿐이니, 당장 학위를 따더라도 대학에서가 아니면 그 학위를 쓸 곳이 마땅치 않다. 대학 사회에서도 국내 학위는 찬밥이다. 처음 들어보는 대학의 학위이지만 해외 유학파라는 이유로, 신통치 않은 듯싶은 연구 실적을 갖고도 학계에서 쉽게 인정받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에 서울-수도권이라는 중심에서 밀려난 거라고 손쉽게 규정하는 지방이라는 조건을 더하면, 정말이지 답이 없다. 솔직히 지방대 출신 인문사회계열 여성 연구자가 학계에 발붙일 곳은 거의 없다. 있더라도 어딜 가서든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여성이라는 편견, 학벌이라는 편견에, 이젠 서울도 아닌 지역이라는 편견, 지잡대 학위라는 폭언까지 극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을 그래도 학문의 세계로 계속 이끄는 것은 연구자로서 남은 일말의 자존심이다. ‘무쓸모의 쓸모’를 꿈꾸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돈 되는 구석 하나 없어도 꿋꿋하게 논문을 써서 학계에 발표하는 것은 스스로 연구자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처절한 노력이다.

이 치열한 친구들을 지도한답시고 앉아 있는 스스로가 부끄러운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현 교육부장관은 자신의 전공학회에서 ‘투고 금지’라는 연구윤리 위반 사례의 처벌을 받았음에도 한 점 부끄러움 없어 보인다. 앞으로 있을 수많은 대학의 연구윤리 위반 사례들을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무슨 낯으로 처리할지 궁금하다. 이걸 목도하면서, 지방대학 선생으로 연구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필자는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학문하는 자긍심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교육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한다. 부끄러움을 안다면, 최소한 스스로 ‘선생’이었음을 자각한다면, 지금 당장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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