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허식 버리고 정성만 올리는 차례 돼야
[경일시론] 허식 버리고 정성만 올리는 차례 돼야
  • 경남일보
  • 승인 2022.08.0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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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위원
이수기 논설위원


조상숭배 전통인 제사는 중국 은(殷)나라 조갑제(祖甲帝)가 형 조경(祖庚)을 몰아낸 후 혈족들을 달래려고 조상제사를 지내자는 것에서 시작됐다 한다. 조갑제는 밉지만 혈족들이 조상 제사까지 외면할 수 없어서 같이 지낸 것이 효시가 되었다. 유교적인 가치관을 기반으로 삼은 조선시대 이후, 조상을 섬기기 위한 중요한 의식으로 제사와 차례를 지냈다. 현대인은 아파트 등 삶의 문화가 급격한 변화로 전통적인 제사 형식이 오늘날 생활방식과 맞지 않아 세대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어쩌면 제사와 차례는 그저 귀찮은 과거의 산물일 뿐이라는 생각도 있다.

제사와 차례 때문에 친척들 간에 얼굴을 붉히거나 고성이 오가다 부부싸움, 스트레스 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제물과 복잡한 제례 절차의 간소화가 필요하다. 제물 준비를 영업집에 맡긴다는 것은 과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당연시하는 추세라, 누가 잘못됐다고 나무라지도 않는다. 제물 주문은 맞벌이 부부나 핵가족이 많이 이용한다. 벌초 대행이 성행하듯 제물 대행도 점점 늘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도 무관해 바나나, 키위, 피자, 커피도 제사상에 오른다. 한글 제문과 지방도 사용되고 컴퓨터에서 뽑아 쓰기도 한다. 코로나 여파로 올 친척도, 먹을 사람도 적은 언택트로 제물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전통 예란 이름으로 여전히 위세를 부리는 관습 중에는 현대와 맞지 않아 합리성이 떨어지는 점도 적지 않다. 돌아가신 날 첫 시간에 지내는 기제사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는 점이 큰 변화이다. 자시(子時)에서 후손들이 제사 다음 날 출근할 수 있도록 앞당겨 밤 9~10시에 지내는 집도 많다. 제사가 간소화되면 얼굴 붉혀가며 싸울 일이 없고, 설, 추석의 차례는 안 지내는 집이 늘고 있다. 불천위(不遷位)와 4대조까지에서 기제사도 2대 또는 부모님으로 줄인 집안도 있다.

유림을 대표하는 성균관 유도회도 최영갑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의례정립위원회는 제례 간소화에 대해 그간 여러 차례의 회의를 열었다 한다. 제사와 차례 상차림, 절차의 시안 등을 현실에 맞게 마련, 국민 여론 조사를 거쳐 올 추석 전 발표할 예정이라 한다. 대중과 친밀한 유교를 만들고자 하는 것으로 유림조차 알지 못하는 의식들이 마치 유교의 정통인 것처럼 행해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라 한다. 국민 고충을 덜어드리는 것이 유도회 의무라고 생각, 제사와 차례를 간소하게 정립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 한다. 과거 30~40개의 제물 그릇이 사용된 제사와 차례 상차림이 현대인의 생활과 맞지 않은 것에 대해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신예기(新禮記)가 나올 것에 기대된다. 제례상 차림법으로 흔히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는 어떤 예서(禮書)에도 나와 있지 않다 한다. 제물의 위치를 따질 필요도 없이 엄정하고 정성껏 차리면 된다. 기일 당일 제사와 명절의 차례 등은 기본 원칙만 지키면서 각 집안 전통인 가가례(家家禮:각 집안에서 행하는 예법, 풍속)에 의하면 된다는 것이다.

제사와 차례는 애초부터 예절이나 전통에 정형화된 원형이 있는 것은 아니라 한다. 다만 특정한 시점에 굳어진 풍속이 있을 뿐이다. 제사음식의 배치 규칙도, 근거도 없는 얘기라 한다. 제사와 차례를 지낼 때 겉치레보다 예법의 본질에 대한 성찰,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더욱 소중한 까닭이다. 전통 제례 문화 지침서인 주자가례도 차례상에 술 한 잔,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을 차리고 술도 한 번만 올린다고 설명하고 있다. 명문 종가집도 차례상은 술, 떡국, 포, 전 한접시, 과일 한 쟁반 등 5가지 음식만 차리는 집안도 있다. 올 추석은 조상을 기억하고, 온 가족의 화목을 지키기 위해 계승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허식은 버리고 정성만 올리는 진정한 차례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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