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31)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31)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08.0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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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덕을 가졌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 안다.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나무는 아주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달이 있고(…) 나무에 하나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산문인가. 그렇지 않다. 시일뿐이다. 첫째는 의인법의 세계이다. 나무는 나무일 뿐, 이 사물에 고독하다느니, 덕이 있다느니 하는 의미 부여는 실로 유아적(幼兒的) 사고이다. 아이들이 돌이나 나무에 물신적(物神的) 의미 부여(活物性)를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유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메타포(은유)의 전면적 수용이다. 이것 역시 유아적 사고의 전형적인 형태임에는 변함이 없다. 메타포의 원리는 그대로 시적인 것의 원리이거니와 이는 ‘A는 B’ 즉 유사성은 동질성이라는 등식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약간이라도 생각할 줄 안다면 유사한 것은 어디까지나 유사하고 동일한 것은 어디까지나 동일한 것이다. 이를 혼동하는 사고는 자라와 솥등을 혼동하는 유아적 사고의 소치이다.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피천득 ‘수필’이라는 글이 있다. 전형적인 메타포이다. 하나의 시를 썼을 뿐이다.-

김윤식(1936~2018. 서울대 명예교수) 선생은 ‘작은 생각의 집짓기(1985, 나남)’라는 글에서 이양하 선생의 ‘나무’와 피천득 선생의 ‘수필’을 들어 수필에서 의인법이나 메타포를 쓴 것은 유아적 사고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평을 했습니다. 산문이 메타포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견지에서 ‘나무’와 ‘수필’은 산문이 아니라는 거지요. 메타포를 쓰면 산문이 시가 된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수필은 비유를 쓰면 안 된다는 주장을 신봉하는 이들에게는 눈이 번쩍 뜨일 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습니다. 나무에 꽃이 피면 안 된다는 이상한 주설이지요. ‘우리가 약간이라도 생각할 줄 안다면’ 이런 ‘유아적 사고’는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산문이라니요? 산문은 나무요 수필은 그 나무에 피는 꽃입니다. 누가 ‘꽃’을 ‘나무’라고 하나요? 살구꽃·찔레꽃 하듯이 산문에 피는 산문의 꽃- 그게 수필작품이라는 글꽃입니다.

뉴욕 타임스라는 신문이 유명한 칼럼니스트 여덟이 쓴 ‘제가 틀렸습니다’ 하는 반성문을 실었다고 합니다. 뉴욕 타임스가 미국에서는 진보 성향이 강한,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좌파 성향이 강한 신문이라고 합니다. 주요 논객들이 자기들이 과거에 쓴 논제를 들어 중도·보수 관점을 간과한 잘못을 스스로 반성했다니. C일보에 실린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가 있네.” 노스캐롤라이나대 제이넵 투페키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길거리 시위는 무조건 역사의 옳은 편이며 집단 시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 사고에 갇혀 있었다.’

인간은 본래 완성되지 못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각은 완전하지 못한 것이며, 그가 하는 말은 독선이기 쉬워 모순과 오류를 내포한다. 그래서 글지이(글을 짓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글은 없다. 그 글은 그의 생각을 담은 그릇일 뿐이다. 걸어온 길 돌아보면서 전에 한 그 말이 누구의 가슴에 못이 되었음을 헤아려 잘못이거나 틀렸음을 깨닫는 사람이기를, 그리고 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우리는 기원합니다. 그 깨달음에의 길이 에세이·수필 사랑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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