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사천·산청 문화원, 국채보상운동 조명
진주·사천·산청 문화원, 국채보상운동 조명
  • 최창민
  • 승인 2022.08.1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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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115주년 맞아 공동 학술대회
서부경남·여성 동참 배경 등 논문
진주·사천·산청문화원은 10일 진주시청 시민홀에서 ‘제115주년 국채보상운동 기념 학술대회’를 공동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지난 2월 3개 시·군 문화원이 전통문화 계승발전과 우호적인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체결한 업무협약에 따른 첫 행사이다.

이날 △국채보상운동 전개와 의의(경운대 김일수 교수) △경남지역 여성의 국채보상운동 역할(㈔선인역사문화연구소 김형목 연구이사) △서부경남의 국채보상운동의 전개와 교훈(추호석 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실장)등 3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추 연구실장은 국채보상운동에 여성들이 적극적이었던 것과 관련해 ‘가족 건강을 위한 금연 운동’과 무관치 않다고 했다.

그는 “3개월간 담배를 끊고 적은 금액으로 국가와 겨례를 위해 큰일을 할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일이어서 (여성들이)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백해무익한 담배를 잠시라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 가족을 위해서 더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이어 “국채보상운동은 동래군 부산항에서 불씨를 내고 대구에 이어 불꽃을 피워 언론의 힘으로 전국으로 확산됐다”면서 “진주와 서부경남에서도 신분고하 종교불문 남녀노소가 보상운동에 떨쳐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발표 논문 주제인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국채를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해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이다. 당시 경남도청이 있었던 진주를 중심으로 사천 산청 남해의 지식인들은 물론, 기생과 백정까지도 적극 운동에 참여해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앞장섰다.

경남도청이 있던 진주를 중심으로 조직된 국채보상 경남회는 1907년 3월 9일 취지서를 발표하고, 대표 발기인으로 강주제(강주식), 강경호(강상호), 안헌(안확) 등이 참여했다. 면우 곽종석 선생은 애국상채소 대표(찬성장)로 추대됐다. 이어 1907년 3월 12일 진주 중앙요양병원(전 도립병원)에서 안택중 안효정 김연배 김기대 임병환 노상직 김휘돈 박준성 강영좌 하만두 노상욱 윤필구 등 수백 명이 동참했다.

김길수 진주문화원장은 “이번 학술대회는 진주시 협조로 이뤄진 3개 문화원 공동사업으로, 서부경남 전통문화 계승 네트워크 구축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며 “서부경남이 염원하는 도청 진주환원 운동에도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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