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재 (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새정부 법무부장관 언사가 화제다. 국회 본회의 및 법사위에서의 설전, 이전 장관과 검사인사 방식에 용모까지 대비 시킨다. 검찰의 인사권을 쥔 ‘끗발’에다 현직 대통령과의 특수관계도 원인일 터이다. 연장선에서 또 다른 인물이 상기된다. DJ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으로 일한 고 박상천 전 의원이다. 5선 의원으로 불세출의 이론가였다. ‘돈세탁방지법’ 등 개혁입법을 이끈, 강골이미지가 씌워졌지만 수줍음까지 머금은 다정다감이 진면모다. 그는 각양의 법안에 담을 제도개선 논박 중 늘 ‘외국사례’를 들췄다. 세계 ‘탑 텐’ 이전의 불가피성을 들었다. 10위권 진입 후는 무용하다고 했다. 이 논제에 적용할 가치로 설정하며 잇는다. 외국사례를 금과옥조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학령! 의무, 공교육이라는 형식교육이 시발되는 나이다. 이 논점의 결말은 없던 일이 되었고, 뜬금없이 들고나온 교육부장관은 사실상 경질되었다. 지구촌 각 나라마다 학령이 다르다. 5세 혹은 6세가 대종이다. 연령에 선 긋기가 어렵다. 인간발달 과정과 공교육과 대칭되는 사교육시장 기류, 미래지향적 인력양성 비전과 무관할 수 없는 화두임에 틀림없다.
우선, 학령의 기원이 되는, 그 시기의 인간발달 단계를 논의 선상에 놓을 필요가 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지금 취학연령 직전 나이인 5세 단계를 ‘직관적 사고기’의 중심으로 본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형태와 사물의 구분이 가능하고, 일상의 인과를 상상하며 수(數) 개념이 생긴다. 6세에서 시작되는 ‘구체적 조작기’, 즉 사물의 이해와 보존적 가치를 습득하는 능력과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굳이 5세와 6세의 다소간 간극이라면 갈등과 불안의 관리능력에 있다. 인간발달학계의 세기적 거두, ‘피아제’나 ‘에릭슨’이 주창한 분류가 그렇다. 하지만 이런 분류가 학령을 가를 절대 기준은 못된다. 개인차 등 발달과정의 특수성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의 사회적기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발달의 원천은 교육에서 비롯된다. 국가경쟁력 차원의 검토가 있어야 한다. 학령하향의 근본 취지는 무상으로 조기 의무교육을 실현하는데 있다. 취학전 사교육의 양극화 내지는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목적도 무시하기 힘들다. 또한 중등교육 종료를 앞당겨 대학교육의 효율화, 산업인력의 조기배출을 도모한다는 목표도 설정돼 있다. 육체적, 심리적 발달의 최고 절정기에 있는 청소년을 학습을 이유로 학교라는 특정한 장소, 일과 전체의 한정된 시간을 묶어두는 것은 합리적 인적관리가 될 수 없다.
시스템변경에는 저항과 반목을 거두는 지혜가 수반되어야 한다. 직역(職域), 계층, 세대별 이질감을 해소할 전략이 필요하다. 시간을 두고 더 필사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학령, 그 충분한 가치가 된다.
인간적 도리라는 허울로 알량한 이기심이 생긴다. 혜량만을 구한다. 지금과 천양지차의 국가위상, 30여년전 전 극동의 작고 왜소한 분단 나라의 20대 중반 청년에게 인간발달(Human Development)이론 체계를 안착시켜준 은사의 명복을 소원한다. 미국 죠지 워싱톤(The George Washington Univ.)대학교 종신교수였던 Dr. Marita Rashid, 올초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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