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추포건송과 창원인의 저항정신
[경일춘추]추포건송과 창원인의 저항정신
  • 경남일보
  • 승인 2022.08.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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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 (마산지역문화연구소장)
임영주 마산지역문화연구소장


우리나라의 지역 고유 풍속과 문화는 오래 전부터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상도지리지는 1425년에 간행됐으며 총설에는 군현의 토지 비척도, 수심의 깊이 기후 풍속 등이 나온다. 당시 경상도 군현들의 기질은 대부분 까다롭지 않다, 검소하다, 농사에 힘쓴다 등이지만 일부는 사납다, 강하다로 돼 있다. 그런데 창원은 추포쟁송으로 ‘거칠고 포악하며 서로 소송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도 별 차이 없이 추포건송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선은 500여 년 역사의 지리지를 편찬하면서 지역별 풍속과 특질을 정리하고 있다. 팔도의 기질에서 경상도를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태산준령, 정조 때 대사간을 지낸 윤행임은 태산교악이라고 했다. 두 분이 ‘큰 산처럼 웅장하고 험악한 기개가 있다’고 표현했다. 창원의 경우 지나치게 비하하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몇 해 전 동아대 김광철 교수는 학술발표회를 통해 지리지를 새롭게 해석했다. 그의 ‘여말선초 사회변동과 창원 지역사회’ 논문에는 밀양의 호투쟁(好鬪爭)은 고을 불량배 방보, 계년 무리가 일시적으로 백성들에게 한 그릇된 행위를 기록자들이 그대로 썼다고 점필재 김종직이 지적한 내용이 있었다. 그 무렵 창원에도 삼별초의 항쟁, 여원연합군의 두 차례 일본 정벌, 왜구의 끊임없는 침탈에 대응하는 거칠고 강인한 모습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민고소금지법에 지방 아전, 백성들이 상급자, 수령을 고발 못하게 했으나 창원 수령들의 심한 횡포에 자구책으로 끊임없이 소송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질은 신라 현덕왕 14년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나라 이름을 장안으로 선포하고 반란했을 때도 있었다. 그때 가담자가 김해, 진주 등지에는 있었으나 굴자군(창원시)은 한 명도 없어 세금을 7년 간 면제받았다고 삼국사기에 기록이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는 왜적에게 한 사람도 항복한 지역민이 없어 체찰사 이원익의 상소로 1601년 창원은 대도호부로 승격이 됐다.

그 외에도 창원에는 1801년 폭정비방 괘서사건, 1893년 반봉건농민항쟁, 마산항 개항 이후, 민족상권 수호투쟁 등이 있었다. 1919년에는 창원읍 가덕도 마산 삼진지역에서 독립운동이 강하게 전개되었다. 민주화운동에도 전국 최초의 유혈항쟁 3·15의거, 유신시대 종말을 고한 부마민주항쟁과 유월항쟁의 선봉에 있었다. 창원인은 강한 저항정신으로 뭉쳐 있으며 올 곧은 성격이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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