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야기]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식물병
[농업이야기]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식물병
  • 경남일보
  • 승인 2022.08.2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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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도 병이 난다고? 식물을 재배하거나 키우지 않는다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전 세계인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고생하는 것처럼 식물도 바이러스나 병에 걸려 변형되거나 죽어간다. 식물을 키우는 모든 곳에는 병이 존재하고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감자역병은 유럽을 지나 아일랜드로 확산되었다. 감자역병에 감염된 감자는 잎과 줄기가 마르고 뿌리가 썩으면서 수확량이 30~50%나 줄어들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감자를 가축사료로 취급하여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당시 아일랜드인은 감자를 주식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기에 굶어 죽거나 소작료를 지불하지 못해 길바닥으로 내쫓기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대기근 시작 당시 800만명이었던 아일랜드 인구가 7년 후 600만명으로 줄었다. 100만명은 아사하거나 못 먹어서 병에 걸려 죽었고 나머지 100만명은 고향을 뒤로 한 채 유럽이나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때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 덕분에 케네디 대통령, 클린턴, 월트디즈니와 같은 아일랜드계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감자역병’으로 인해 미국의 정치와 문화가 변했다.

식물병은 바나나를 멸종시킬 뻔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과일인 바나나는 1870년 한 미국인이 자메이카에서 바나나를 가져오면서 인기가 급속하게 치솟았다. 당시 적당한 경도와 높은 당도를 지닌 ‘그로미셀’이란 품종이 단일 품종으로 재배되었는데 이 품종은 시들음병에 취약했다. 1950년 파나마에서 시작된 시들음병은 전 세계 바나나 재배지로 퍼져나갔다. 그 당시 재배되었던 바나나는 단일품종으로 유전적 다양성이 없어 시들음병에 초토화되어 멸종되었다.

그 후 시들음병에 저항성이 있는 캐번디시라는 품종을 우여곡절 끝에 찾았고 전 세계적으로 이 품종이 현재까지 재배되고 있지만 아직도 시들음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1980년 신종 시들음병인 TR4가 발생하였고 대만, 인도네시아, 중국에 확산되어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 시들음병 치료법이 개발되어 있지 않아 연구자들은 방제방법과 함께 시들음병에 강한 새 품종을 개발하려 고군분투 중이다.

과거 식물병은 식물을 멸종시킬 뻔 했으며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는 기후변화와 아열대 작물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식물병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정부와 지자체 연구기관은 병원체의 유전정보를 분석해 신속한 진단기술을 개발하고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여 식물병의 진단과 방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연구 중이다. 어떻게 보면 작고 별 볼일 없는 식물병이 우리의 삶과 생태계를 지금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한인영 경남도농업기술원 환경농업연구과 농업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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