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법 논리가 그렇게나 엉성한 여당이었나
[경일시론]법 논리가 그렇게나 엉성한 여당이었나
  • 경남일보
  • 승인 2022.08.3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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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정재모 논설위원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소속 당 비대위 관련 쟁송에서 일단 이겼다. 그가 낸 당 비대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남부지법이 지난 26일 받아들인 거다. 주호영 비대위원장은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직무에 임할 수 없다. 비대위 체제로 내년 초까지 새 대표를 뽑으려던 여당 구상이 어지럽게 헝클어져 버렸다.

지난 나흘 동안 갈팡질팡하는 여당 모습은 마치 벌에 쏘인 송아지 꼴이다. 꿈에도 예상치 않았던 일이기 때문이리라. 후속 대책을 놓고도 소속 의원들은 ‘백화제방’이다. 불치병 처방전처럼 아노미 상태에서 쏟아내는 자유 발언은 거센 소용돌이를 이룬다. 보기에 딱한 대 혼돈을 보면서 하고 싶은 한두 마디 참기 어렵다. 두메에 앉은 이방의 조정 일 걱정일까.

판결 전 여당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은 이 전 대표의 신청이 기각될 줄 알았다. 미디어들의 어설픈 분석과 국민의힘이 냈던 큰소리를 믿은 것이다. 당에서는 온갖 조롱 섞인 어투로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비웃었다. “뻔히 기각될 줄 알면서도 형사 처벌 이후 복귀를 염두에 둔 몸짓”이라느니 어쩌니 별별 분석들을 뱉어냈다. 율사 출신 의원들로 구성했을 당 법률지원단도 기각을 의심 없이 자신했다.

매체에 출연하는 우파 패널들의 허풍스러운 예측이야 그렇다 하자. 그 많은 당내 율사들마저 어떻게 그처럼 하나같이 확신에 차 있었던가. 어떤 이는 “담당 판사가 비록 좌파일지라도 정당 자율성을 짓밟는 판결은 않을 거”라는 점(占)도 쳤다. 마치 재작년 총선 때 야당이 180석 이상 얻을 거라고 뇌까리던 일부 유튜버들의 ‘후까시 분석’(허세)을 연상케 하는 교만이자 자기 도취였다. 법원은 그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판결문은 차가웠다.

재판부는 당이 비대위를 꾸려야 할 만한 비상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비상 상황을 만들려 한 것이지 당헌에 규정된 비대위 구성 조건에 맞는 이유가 없었다는 것. 대표는 6개월 뒤 복귀할 거고,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비상 상태가 아니었다는 논지였다. 국민의힘은 법원이 당의 비상 여부 판단까지 하느냐고 아우성이지만 허망한 뒷북이다.

판결문엔 여당이 뼈 아플 대목도 많다. 그중 최고위원회 기능 상실로 비상 상황이 되었다는 당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백미다. “최고위원의 사퇴는 정식 사퇴서를 제출해야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다. 그렇다면 비상 상황을 선언했던 상임전국위 의결 때까지 정원의 과반인 5명이 남아있었던 셈이니 최고위 기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없다.” 배현진·윤영석 의원이 사퇴했다면서도 한편으론 ‘사퇴서를 안냈으니 의결권이 있다’는 말은 모순이란 거다. 또 “국민의힘이 지난 2일 최고위원 9명 중 4명만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의결했다”고 적시했다. 사퇴자가 있음에도 최고위원회 기능을 유지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었다. 다툴 수 없는 송곳 논리다.

당에 포진한 많은 율사 의원들 중 이런 것 하나 미리 집어낸 이가 없었나. 법관 출신 의원이 많기로 호가 난 국민의힘 법률 논리가 이렇게도 엉성했던가. 사람들은 한심해 하고 있다. 재판부의 이번 판단에 비판적 시각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당 운명이 걸린 송사에서 법률 문제 대비가 저리도 허술했다니. 저런 여당을 믿어야 하나. 국민의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지금 혀를 끌끌 차고 있다.

덧붙이고 싶은 건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담당 판사 성향에 대한 발언 문제다. 그는 판사의 특정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느냐는 기자 질문에 ‘그렇게 들은 말을 생각케 된다’고 했다. 에두른 긍정이고 쪼잔한 생각이다. 이의신청 권리가 보장되듯 판결의 권위는 누가 내린 것이든 존중돼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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