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다산 정약용의 진주예찬
[경일춘추]다산 정약용의 진주예찬
  • 경남일보
  • 승인 2022.08.3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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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강신웅


진주성 촉석루 옆 논개 사당인 의기사 편액에 정약용의 의기사기(義妓祠記)가 걸려있다. 그의 ‘다산문집’에 보이는 3수의 진주 촉석루 및 논개 관련 시문과 ‘의기사기’ 아래 부분에 ‘곁들여 감회를 읊은 시 한 수를 덧붙임’이라는 제목의 시 한수가 남아있다. ‘오랑캐의 바다를 동쪽으로 바라보니 숱한 세월 흘렀어라/붉은 누각 은은하게 산하에 잠기인 듯/ 꽃핀 못에는 지난날 미인의 춤이 비치고/단청한 기둥엔 장사(壯士)가 머무는 듯/ 전쟁터의 봄바람은 초목 끝에 감돌고/ 붉은 성 밤비에 강물이 불어난다/지금은 남겨진 사당에 영령이 계시는 듯/ 한밤중에 촛불 밝히고 술잔을 올리노라’

의기사기와 바로 아래의 ‘부 감음일수(附 感吟一首)’의 시문은 1740년(영조16년)에 의기사가 창건 된지 40년만인 1780년 당시 경상우병사로 있었던 정약용의 장인 홍화보에 의해 의기사가 중건되던 날, 그의 장인 명에 따라 기문과 함께 시 한 수를 지어 덧붙인 것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하고 이익(李瀷)의 근기사상을 계승하고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편의 다양한 저술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왕도정치’이념을 구현하고 오직 ‘국태민안(國泰民安)’만을 도모하고자 노력했다. 다산년보에 의하면 다산이 진주에 첫 방문했을 때(1780년)가 춘삼월 호시절이어서 장인 홍화보와 함께 남강에서 뱃놀이를 하고 촉석루에 올라 진주검무와 포구락무를 감상했다 한다. 시 작품들로는 촉석루회고, 배외구홍절도범유와 무검편증미인이 있었는데, 작품 모두가 진주의 경관과 진주인의 충절을 칭송하는 명시이다.

그 후 다산이 스물아홉 살이었던, 1790년 두 번째로 진주를 방문했다. 부친인 정재원이 진주목사로 부임해 문안차 들렀다. 다산은 이때도 촉석루에 올라 남강 등 진주의 풍광을 바라보았다. 이 때 남긴 시가 바로 ‘촉석루에 다시 올라 노닐다(重遊矗石樓)’라는 작품이다. 조선 말기, 정약용은 중앙 조정으로부터도 한때 총애를 크게 받았다. 당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였던 홍화보의 사위로써뿐만 아니라, 이어 진주목사로 부임한 그의 부친 정재원 때문이기도 하는 등 다산과 진주와의 인연은 숙명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본시 진주인의 특별한 충절정신과 지령(地靈)인 진주의 산하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그 누구보다 진주와 진주인의 풍류, 그리고 특별히 그들 진주인들의 충절에 대한 그의 진심이 담긴 저술과 작품을 진주에 많이 남겼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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