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저 남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경일시론]저 남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9.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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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서유석


올해 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가 막힌 일이 하나 벌어졌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유명한 코미디언인데, 자신과 친한 배우를 믿고 그 배우의 아내에게 모욕적인 농담을 했다가, 생방송 도중 속칭 ‘싸대기’를 맞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동안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어떠한 폭력도 용인할 수 없다는 당연한 이야기에 맞서 ‘너’같으면 자신의 아내가 모욕당했는데 참을 수 있겠냐는 그럴듯한 반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폭력을 행사했던 윌 스미스가 했던 유명한 말이 하나 있다. 자신의 아들을 두고 한 말이다. 속칭 사춘기가 한참일 자기 아들을 보고, 자신이 자기 아들 나이일 때는 자기 아들보다 더 바보(?)같고 멍청했지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거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SNS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하긴 유명한 영국의 축구감독도 지금까지 회자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하지만 눈앞에 있는 매체를 쓰지 않고 배길 수는 없다. 요즘 정치인들은 중요한 발언, 공개적인 기자회견에서 하기 어려운 발언은 아예 들으라고 SNS를 이용한다. 그렇게 된 지 꽤 되었다. 그리고 그 SNS를 통한 설화(舌禍)는 시시때때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최근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뒤에도 그랬다.

초강력 태풍으로 우려했던 힌남노의 피해 규모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고 말들을 하지만 그것도 전국을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지, 태풍의 피해가 극심한 태풍의 오른쪽, 그리고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놓인 동남권 도시들에게는 예외다. 울산의 피해는 그런대로 복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싶지만, 포항과 경주에 남은 상처는 엄청나다. 너무나 안타까운 인명피해는 물론이거니와 국가 기간 산업체인 포항제철은 지금 일당 125만원을 지급하며 고로를 살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피해는 저 서울 사람들에게는 남의 일처럼 들리는 듯싶다. 김광석의 유명한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작사가로 알려진 시인이 하나 있다. 그 시인이 페이스북에 남긴 말 때문에 한참 시끄러웠다. 포항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고, 엄청난 수해로 인해 특정 지역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초강력 태풍의 위력이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고 태풍을 ‘쥐새끼’ 운운한 것이다. 이 사람뿐만이 아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많은 SNS에서 태풍 힌남노의 일부 지역에 국한했던 피해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고갔던 것이 사실이다. 과잉대응이니, 별 문제 없었는데 호들갑이었다느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가 한참 오고갔다. 이런 말들을 태연하게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철저하게 대비했기 때문에 피해가 일부 지역에 한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까? 사실 이런 망발에는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못하는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사고관이 깔려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거기다 나는 피해가 없으니 별 일 아니라는, 그놈의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에서 다들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저 멀리 남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대한민국이 서울과 수도권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란 말이다. 언론은, 아니 이 땅의 일부 사람들은 자신에게 피해가 없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 지엽적인 사고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숨죽여 힌남노의 피해를 두려워하다 무사히 태풍을 바다로 보내버린 우리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뭍을 떠난 힌남노가 동해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울릉도와 독도를 할퀴고 지나간 것은 어느 언론도 집중적으로 보도한 바 없는 듯싶다. 이렇게 편중된 재해 보도는 결국 주요 언론사가 위치한 서울과 수도권에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필자만의 오해일까?

세상을 떠난 신영복 선생이 ‘주변이 중심을 질투하지 않으면 주변이 중심이 될 수 있다’고 하신 바 있다. 지역은 언제까지 서울만 지향하고, 서울 중심의 보도 행태와 여론 형성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사람들이 지난 달 서울의 수해 피해를 보고, ‘우리는 당하지 않았으니 당신들 일’이라고 SNS에서 떠들어댔다면, 대한민국의 중심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떠할까? 같이 사는 세상이다. 제발 지역의 피해에 대해 남 말 하듯 하는 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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