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칼럼]가을이면 더욱 아련하게 다가오는 학창시절 풍경
[의정칼럼]가을이면 더욱 아련하게 다가오는 학창시절 풍경
  • 경남일보
  • 승인 2022.09.1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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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경남도의원)
정재욱 의원


“가을이 오면 /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 눈을 감으면 / 싱그런 바람 가득한 /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와요 / 길을 걸으면 /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 하늘을 보면 /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 가득한 저 하늘에 / 가을이 오면∼”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곡처럼 가을이 오면 남녀노소 누구나 겨울 독감 보다 심한 지독한 감성에 젖곤 한다. 한가롭게 이 생각, 저 생각 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주는 자연의 포만감이 아닐까 싶다. 사람마다 아련한 추억 한두 가지 정도는 가슴 속에 간직하고 산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해주시던 밥상, 헤어진 옛 애인과의 사랑, 그 유명한 17대 1로 싸워 영웅이 된 추억 등등.

필자는 올해 1983년생으로 나름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만끽한 소중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특히, 국민학교로 졸업한 마지막 기수이다. 나의 유년기, 국민학교 시절의 풍경은 내 인생의 황금기 였으며 수억 원에 호가하는 미술품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머릿속의 명작이다.

구구단을 틀려 남아서 연습하던 장면, 선생님이 골마루에 왁스를 찍어주시면 달리기 경주라도 하듯 친구들과 신나게 걸레질 하던 장면, 짧은 쉬는 시간에도 헛되게 보내지 않고 교실 한켠에서 말타기, 제기차기 하는 장면, 월요일과 토요일 아침 조례(朝禮) 시간에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이 너무 길어 진땀 흘리며 서있던 장면, 공기놀이 하는 장면, 여름 방학이면 잠자리채와 연두색 곤충채집통을 들고 고목나무에 올라가려 친구들과 목마를 타는 장면, 고무줄을 끊어 고무줄 놀이를 하던 친구에게 먼지 나도록 맞는 장면, 숨바꼭질이 끝난 줄도 모르고 해질 때까지 숨어있는 장면, 소풍에 꼭 따라오시던 야바위 아저씨들, 교문 앞에서 샛노란 병아리를 팔던 아저씨, 조그만 국자에 설탕 한 스푼에 소다를 넣어 만든 달고나, 연탄 구멍 속으로 쫄쫄이를 구워 먹던 장면 등 생각만 해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풍경들이다.

이러한 학창시절 풍경 중 단연코 최고의 장면은 가을 운동회가 아닐까 싶다. ‘라떼’의 가을운동회는 체력장이나 배운 것을 실습하는 수준이 아니라 선생님과 학생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등 집안 구성원들이 총출동하는 아마 동네에서 제일 큰 잔치였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학생의 소속에 따라 편이 나눠 세상 모든 걸 걸고 동참할 정도로 말이다. 어른들은 학교 담장 밑으로 돗자리에 둘러 앉아 새벽부터 준비한 음식과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잔치를 만끽했으며 아이들은 가족들에게 실력을 뽐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종목에 임한다. 종목마다 성격이 다르겠지만 가족들이 참여하는 경기는 온 가족이 손에 땀을 지곤 했다.

학생들이 일정한 거리를 달리다가 코스 중간에 종이에 적힌 사람을 불러내 함께 달리는 경기는 옆집 아주머니, 뒷집 형님 손을 잡고 뛰어야 하기도, 또는 아무리 찾아도 찾는 사람이 없어 속상해 주저 앉아 우는 학생이 비일비재 했고 단체 계주에서 바통을 잘못 받아 떨어뜨리기도 하고 의욕이 앞선 아버님의 슬라이딩에 그 아이는 망연자실 하며 울음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수십 명이 동원되어 펼쳐지는 차전놀이의 양 장군은 모든 이의 응원을 받으며 최고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연출한다. 그 중 한자리를 차지했던 나의 가을 운동회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제 그만한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아들과 운동장을 함께 뛰어 볼 기회가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나의 학창시절 풍경을 더욱 아련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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