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FA-50 폴란드 수출, 항공산업의 역사를 쓰다
[객원칼럼]FA-50 폴란드 수출, 항공산업의 역사를 쓰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9.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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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돈 (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산학협력처장)
양희돈


공군의 고등훈련기 소요제기 94대, 자주국방의 대의명분 아래 단군이래 최대 방산 개발사업 승인. 그것이 T-50의 시작이었다. T-50의 개발 성공을 가늠하던 초도비행이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가득했던 2002년 8월이었으니 만 20년이 흐른 시점에 초도비행의 날개 끝 와류가 나비효과가 되어 T-50 계열 항공기 수출 사상 최대규모인 FA-50 48대 폴란드 수출이라는 태풍을 일으켰다.

지난 7월 말 총괄합의 서명에 이어 현지시각으로 9월 16일 가격과 세부조건이 확정된 이행계약이 체결되었다. 계약 금액은 30억 달러로 4조원이 넘는 액수이다. 현재까지 인도네시아, 필리핀, 이라크, 태국에 수출된 누적 물량인 72대에 견줄만한 수준이며, 특히 이번 계약은 훈련기(T-50)나 경공격기(TA-50) 버전이 아닌 상급의 경전투기(FA-50)로만 되어있어 사업비 측면에서는 동등한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군용항공기 도입 계약은 대규모 예산이 수반되는 점과 향후 수십년 간의 운영을 고려해야 하는 점 등으로 매우 신중한 의사결정을 필요로하며 수년간의 지루하고도 험난한 협상이 소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폴란드 수출은 매우 이례적으로 전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배경에는 국제 정세에서의 폴란드의 현 상황과 한국의 항공방산 분야에서의 오랜기간 준비된 역량이 있었다.

동유럽에 위치한 폴란드는 수도 바르샤바가 러시아의 미사일 기지인 칼리닌그라드에서와 불과 350㎞ 떨어져 있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비단 이웃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자국에도 직접적인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극도의 경계심이 작용하고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동쪽으로 접한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부속국 역할을 하므로 국경의 1/3은 이미 러시아와 맞대고 있는 실정이다.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는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자국 항공전력의 절반 수준인 MiG-29와 Su-22를 전부 우크라이나에 공여했다. 따라서 남은 F-16 48대로 공군을 운영하고 있으며 소련제 항공기에 익숙한 조종사들의 임무전환을 위해 미국제 F시리즈 항공기와 높은 호환성이 보장되는 훈련기의 긴급 수급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계약물량 중 한국공군과 동일한 FA-50 12대를 내년부터 인도하고 잔여물량 36대는 폴란드의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FA-50PL 버전으로 2025년 하반기부터 인도하는 것을 계약조건으로 하고 있다.

흔히들 항공산업을 투자회수 기간이 큰 산업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항공산업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번 수출 성공을 계기로 뒤돌아보면 T-50의 시작은 록히드마틴을 파트너로 선정하여 KF-16을 도입했던 KFP 사업(1983~1994)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실로 30년 이상의 스케일을 가진 일련의 결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KFP 사업을 통해 항공기 생산기술을 습득하였으며 파생된 절충교역을 통해 삼성항공(현 KAI)이 록히드마틴의 기술지원으로 T-50을 개발하게 됐다. 이후 확보된 독자기술을 기반으로 파생형을 개발하고 설계변경을 통해 각국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며 수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폴란드와의 전격적인 계약은 유럽 대륙에 수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를 계기로 이웃 국가인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T-50의 구매를 발빠르게 검토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현지 업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현지 생산기지와 정비센터까지 설립하기로 해 유럽 국가들에 대한 수출 마케팅 효과까지 기대되고 있다.

무인기 시대가 도래하여 기존의 훈련기는 도태된다는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T-50은 K방산의 위용으로 수출의 정점을 점차 높여가고 있다. KF-16에서 T-50으로 이어진 30여년의 시간을 함께 지나 얼마 전 우리 곁에 돌아온 영화 탑건 매버릭의 대사가 불현듯 떠오른다. “Maybe so, sir. But not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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