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노점상 할머니의 10만원
[기자의 시각]노점상 할머니의 10만원
  • 박준언
  • 승인 2022.09.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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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언 기자


지난 2일 김해 한 동사무소에 80대 할머니 한 분이 비를 맞으며 방문했다. 걸음이 불편한 이 할머니는 유모차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오는 탓에 우산을 받쳐들 손이 없었다. 문에 들어선 이 할머니는 입구에서 공무원을 찾은 뒤 허리춤에서 흰 봉투 하나를 내놓았다. 봉투 속에는 5만원권 지폐 1장과 1만원권 지폐 5장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봉투를 전달하면서 “어려운 독거노인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젊은 시절 어려운 형편에 자식들을 힘들게 키워 가난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주위에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 분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함에도 교통비 절약을 위해 새벽에 열리는 시장까지 1시간 30분을 걸어가 야채를 떼다 판돈을 한푼 두푼 모은 것을 기부했다. 이웃돕기 성금을 기부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어릴 적 결심했던 것을 실천한 것이다. 남은 인생 얼마남지 않은 거 조금이라도 어려운 사람한테 보탬이 되면서 살자.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몇 년 전에도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를 위해 낮에는 채소를 팔고, 밤에는 폐지를 주워 모은 돈 20만원을 친구 병원비로 보태준 적도 있다. 이 할머니는 젊은 시절 혼자된 뒤 5남매를 키우기 위해 억척같이 일하며 힘겨운 삶을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자식들이 모두 장성한 지금도 노점에서 채소를 팔며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있다. 할머니는 “앞으로도 힘이 된다면 50만원이고, 100만원이고 더 많은 기부를 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동사무소를 나섰다.

돈은 벌기도 힘들지만 제대로 쓰기도 쉽지 않다. 특히 투자나 이자가 아닌 내 손과 발로 한푼 한푼 모은 피와 땀이 섞인 돈은 더욱 사용하기가 어렵다. 그러한 돈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내놓는다는 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돈은 액수로 그 가치가 정해진다. 고액기부자들에 대한 뉴스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금액보다 그 속에 담긴 정성과 사연이 더 값지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 할머니가 건강하게 더 오래오래 사셔서 하고 싶으신 기부 마음껏 하시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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